한국 '동춘차'를 비롯한, 각 나라 녹차의 이야기
녹차라면 구수한 맛과 고소한 맛을 이야기할 때가 많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론 뒤에 '청향'이 맴도는 녹차를 선호한다. '입속이 화한 맛'이라고 해야 할지, 아님 '청아한 맛'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청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녹차가 있다고 '쌤'이 전부터 이야기해주셨는데, '동춘차'가 대표적이라고 하셨다.
문제는, 그 '동춘차'를 마셔볼 기회가 없었다는 거다. 워낙 소량으로 생산되기도 하고, 차를 사러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직은 아니어서(더 깊게 빠지면 모르겠다), 쌤이 우려 주시는 차만 마시고 있었기에, 찻집 'D'를 뻔질나게 드나들면 혹시라도 한 번은 그 차를 마셔보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다(아직은 수동적인 차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속물적이다).
한중일 녹차 수업이 있는 날, 수업이 있는 여느 날처럼, 테이블에는 오늘 마셔볼 차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차마다 쓰여있는 이름을 읽어나가던 중에, 눈에 들어온 '동춘차'. 드디어 마셔보는구나. 속물적이어도 상관없다. 오늘은 이 차만 느낄 수 있어도 수업을 들은 보람이 있을 것이다. 등등등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오늘은 한중일 녹차에 대한 비교예요. 우선 일본의 현미녹차를 마시면서 속을 데우죠."
이런...... 맛있는 것은 아껴놨다 나중에 먹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오늘은 모든 신경이 한 그릇에 쏠려있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본의 '옥로차'도 좋은 차고, 중국의 '서호용정'도 인상 깊었으며, 한국의 '하동녹차'도 분명 훌륭한 차지만, 그 날 만큼은 그들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녹차는 불발효차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차를 마신다라고 하면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차이기도 하고요.
차의 최대 생산지인 중국의 경우도.
다른 차들보다 녹차 생상량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의 대부분이 녹차이기에,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 익숙하다는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일본의 '말차'도 녹차 계열에 속하게 되고(가공방법이 다르지만), 초밥집에 가면 나오는 '옥로차'나 '전차'의 경우에도 전부 녹차 계열이기에,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이 마시는 차가 '녹차'라고 볼 수 있다고 하셨다.
ppt에 설명되는 나라별 녹차의 제다법과, 한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녹차일지라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한참 진행되었다(그리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옥로차와 전차를 우려낸 후의 찻잎을 맛보기도 하고(옥로는 '참두릅', 전차는 '개두릅' 맛이었다), 중국 녹차의 다양한 입 형태를 보기도 했다.
"한국의 녹차문화도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이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차에 '이야기(스토리)'를 입히는 건데, 한국의 경우는 그 스토리가 빈약할 때가 많아요. 그나마 요즘 오**같은 대기업들이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이야기 등을 알리려고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배운 적이 있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추사 김정희가 정말 친한 초의선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차를 내놓으라고 징징대었다는 이야기. '위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역사 속 인물이, '차'를 달라고 '스님'에게 재촉했다는 그 이야기가 십여 년이 지난 이후에도 기억이 난다.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스님의 편지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차의 인연만은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버리지도 못해 또 이렇게 차를 달라고 조르게 되오"
후에 다시 찾아본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의 구문이다.
더 이상 지체하거나 어김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요.
친구를 향한 완벽한 협박. 친구인 너보다 너의 차를 사랑한다는 그 고백은, 정말 친하기에 할 수 있는 협박이자, 초의선사가 만드는 차를 정말로 마시고 싶다는 투정이 섞인 연애편지 같다.
"그리고 동춘차는 '박동춘' 선생님이 초의선사의 맥을 이어받아, 그 제다법으로 만드는 차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스님들을 통하여 내려왔던 제다법을, 현재까지 고집하고 계세요."
드디어 우려 지는 '동춘차'. 그 향기가 퍼져나간다. 은은한 향이다. 고소한 향이 진한 일반 녹차와 다르게, 높은 온도의 물에, 짧은 시간 우려 지는 동춘차의 향은 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차의 색도 맑은 색에 가깝다. 그 향을 음미하고 입에 담는다.
처음에 느껴지는 것은 단맛. 진하지 않은 그 단맛이 나를 반기고, 그 후로 다양한 향(보통 좋은 차는 5가지 맛을 모두 낸다고 한다)이 입에서 맴돈다. 목 뒤로 넘어가면, 청아한 향이, 그 '청향'이 속으로부터 올라온다. 깔끔하다. 화하다. 단아하다.
"기대했던 대로인가요?"
선생님의 물음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꼈다. 추사 김정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이 차에 맛을 들이면, 나도 쌤에게 차를 내놓으라고 협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순천에 계시다는 쌤의 쌤에게,
인사를 빙자한 협박 및 고백편지를 보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