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2] B의 이야기
B가 없을 때는 가족의 사랑은 I의 차지였다.
그러나 B가 태어나고 난 후부터는 그 사랑을 나누어야 했다. 물론 B와 I의 부모는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둘에게 가는 사랑의 양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I의 입장에서는 B의 존재가 눈엣가시 일 수밖에 없었다.
B와 I는 물고 뜯고 싸우며 성장했고(무력보다는 말로 더 많이 싸웠다), 세상의 모든 형제가 그렇듯 점점 더 무심해졌다. I는 B가 귀찮을 뿐이었고, B는 I가 꼰대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사춘기를 보내며, 그들은 점점 더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게임은 공유하였지만, 각자의 삶은 공유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Normal 한 게 아니라 Standard 한 거야.
라고 B가 말한 날, I는 B를 어른으로 인정했다. 이보다 더 그들의 삶을 잘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둘은 그전에 쌓아왔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히려 커서 더 서로를 의지하게 된 형제였다.
I는 커서 가족의 곁을 떠나 타지로 도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 가족은 화목했고, B 역시 유학을 떠나면서 가족의 곁을 떠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가득했다. B가 말했던 것처럼 B와 I의 가족은 Normal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바라는 Standard 한 삶을 살고 있었다.
B가 유학 가기 6개월 전, B와 I는 같은 방에서 하숙을 했다. I가 기억하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시기였다. I는 학교에서 제공한 스튜디오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어도, 원한다면 B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을 소중히 했다. 둘 다 나라에서 지정한 성인이 된 바로 후의 그 시기는, 함께 마음껏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어느 봄, B는 I에게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사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B가 결혼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I는 그들의 부모와 고모,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결혼을 시켜버리자고 말을 흘린다. 그날 I는 B에게 전활 걸어 이렇게 말했다.
“축하해. 네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결혼 행 특급열차를 탔어. 그리고 브레이크는 없단다.”
그로부터 2달 후 B와 I의 부모는 상견례를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B의 여자 친구 및 그 가족은 미국으로 넘어간 이민자였기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B와 I의 부모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 빨랐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3일이 걸린 혼담 후 정확히 5개월 후에, B는 그의 부모가 결혼했던 한국의 한 성당에서,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
I가 B의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은 신사동의 한 곱창 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훨씬 더 괜찮은 곳에서 밥을 사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타지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곱창이 훨씬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I는 1달 후 제수씨가 될 B의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란 말이 싫어요. 함께 살다가 너무 안 맞는다 싶으면, 이혼할 수도 있는 거고, 즐거우면 계속 같이 살면 되는 거니까 반드시 괜찮은 부부가 되어야겠다는 부담감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그 둘은 아직까지는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고, 꽤나 화목해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길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걸 B도 I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한 삶이고 B는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이다.
I는 술에 취해서 종종 B에게 전화를 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B이기에, I가 늦은 밤 전화하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시간대에 있다. 가족은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가장 애틋하다는 생각을 I는 하고 있고, 그 애틋함으로 인하여 두 형제는 30대가 넘은 지금은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의 완성으로 보인다.
그래서 I가 B에게 전화를 거는 날은 위안을 받는 날이고,
종종 전화를 걸 수 있는 지금의 시대가 아주 괜찮은 시대라고 느낀다.
PS. 사랑하는 동생아. 아마 너는 이 표현 자체만으로도 징그러울 거야. 우리 형제는 생각보다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그리고 많이 하는 편이지만(무뚝뚝함과는 거리가 먼 가족이니까) 생각해보면 너에게는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네. 사랑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