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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Apr 20. 2023

#9.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는 일

이모와 함께 한, 봄날의 백차수업

철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혼자만 몰래 이용하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을 꿈꾼다. 중요한 점은 비어있는 곳이 아니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내가 평소에 보는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는 곳.


대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의 인구밀도는 유지하는 곳.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주위에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곳만큼은 침범(?)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가, 각각의 형태로 본인만의 형태로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찻집 'D'가 그런 공간에 해당한다. 나의 공간이 아니기에, 나만의 아지트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들어가는 순간 편안해지는 장소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을 정도로, 지금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그곳에 계속 있었으면 하는 찻집이다.



안 돼요!


이런 한가로운 생각을 쌤에게 말했다가 혼났다. 주변에 널리 알려달라며, 장사를 해야 먹고살지 않겠냐는 핀잔을 들었다. 역시, 혼자만 알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래도(쌤이 아무리 안된다고 하셔도) 한동안은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나만의 차 생활을 즐겼다.


"어딜 그렇게 갔다 오는 거야?"


이모가 본인의 집을 리모델링하는 동안, 내가 머물던 곳에서 몇 달간 함께 지낸 기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이모 부부와 여러 장소들을 함께 방문했음에도, 찻집 'D'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가끔 서로가 몇 시간씩 사라졌다 나타난다는 정도의 관심을 바탕으로 느슨한 동거(?)를 했어서, 내 모든 스케줄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활동하기 좋은 봄날, 위와 같은 질문이 이모로부터 나왔을 때, 함께 찾아가게 되었지만.



친척들이 특별하게 차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보다는 '커피'와 '술'에 더 관심이 많은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이모도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백차수업을 함께 가는 것이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이모와 함께 찻집 'D'에 들어선 순간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쌤. 처음 찻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칭찬으로부터 시작한다. 정말 이쁜 공간이라고. 과하지 않고, 구석구석 세심함이 묻어있는 공간이라고. 이모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가며 시선을 여러 곳에 두고 난 후, 마치 익숙한 공간에 온듯한 편안함을 느낀다고 쌤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전자가 끓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담백한 답변. 이러한 말소리와 기물의 소리조차 하나의 분위기가 된다.



"백차는 보통 찻잎을 시들게 하는 '위조'와 '건조', 이 두 가지의 제다 과정만을 거치는 차입니다. 6대 다류라고 할 수 있는 구분법에서 가공 단계가 가장 적은 차에 해당하죠. 백차 내에서도 어린싹만 따서 만드는 '백아차'와 잎을 섞어서 만드는 '백엽차'로 구분이 됩니다. 오늘 이 두 가지만 구분하실 수 있어도 수업을 잘 들으신 거예요."


벌써 어렵다. 외우거나 아는 것보다, 마시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는 나도 이럴지인데, 6대 다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이모는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옆을 보니, 의외로 눈을 반짝이면서 듣고 있다.


"잘 보시면, 싹에 솜털이 그대로 붙어 있을 겁니다. '백호은침'이라 불리는 백차는 이름 그대로 솜털이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은색 바늘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붙을 정도예요. 이대로 차를 우리면 차 위에 솜털이 뜨다 보니, 그에 대한 거북함도 있으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이 자체가 백차의 묘미라고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설명이 덧붙여진다. 그리고 동시에 차가 우려 지는 모습을 본다. 다른 차들보다는 확연이 맑은 느낌의 색깔이다. '백차'라는 이름에 걸맞은 색이다.


"마셔보시고, 다른 차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보아요"


백차의 맛은 상큼하다에 가깝다. 묵직하기보다는 입 속에서 '톡톡' 튀는 느낌이다. 텁텁하지 않고, 목에 넘기고 나서도 속에서 싸한 느낌이 올라온다.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은 차이기 때문에, 원래 차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톡 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보다는 지금과 같은 봄에 어울리는, 상쾌한 차.


백차도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입 자체가 통통한 애들부터, 넓게 펴진 채로 말려진 고수차들도 존재한다. 형태부터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차와 다르게 제각각으로 생겼다.


"모든 차가 그렇지만, 백차는 특히 주구장창 마시면 속이 쓰리니, 꼭 다식을 드셔가면서 마시세요." 



다식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예쁜 걸 좋아하는 이모에 취향에 딱 맞는 모습이다. 차와 함께, 다식을 먹는 이모를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겹친다. 마음에 들었으려나? 지루하지는 않았으려나? 아니다, 너무 마음에 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이왕 함께 온 것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등등


좋은 공간 소개해줘서 고마워!


차를 잘 모르더라도,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충분히 그 시간을 즐겼다는 이모의 인사말에, 아지트를 들킨 것 같아 또 속이 시끄럽다. 따뜻한 봄날, 가장 어울리는 백차와 함께,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하는 완벽한 시간이었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마음이 약간 통통 튀는 날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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