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가 아닌 사랑

미세리코르디아를 보고 난 뒤

by 하무

제레미는 10년 만에, 자신의 스승이자 사랑하던 사람인 리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고인의 부인 마르틴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로부터 감춰져 있던, 그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연민과 증오, 사랑과 집착이 드러나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제목 그대로 ‘자비’에 관한, 주인공 제레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영화이다.



제레미는 줄곧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대답하지 않으며, 그의 감정 표현은 다소 외설적이다.

그런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인물은 결국 제레미에게 살해당한 뱅상과 경찰, 그리고 왈테르다.


뱅상은 제레미가 어머니 마르틴과 관계를 가지려 한다며 그를 의심하고 힐난한다.

그의 행동에는 제레미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제레미에게 다가갔고, 제레미는 그를 거부했다.

그로 인해 그는 제레미에게 집착하며, 끝내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은, 제레미에게 먼저 나뭇가지로 가격당한 뒤 저항할 수 없음에도 다시 돌로 가격당해 살해되는 것이다.

그는 자비를 베풀지 못했고, 자비 없이 생을 마감한다.



경찰 또한 줄곧 제레미를 의심한다.

신부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벽마다 그를 찾아와 자백을 종용한다.

새벽에 제레미를 찾아오는 행위는 뱅상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제레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두 사람의 행위가 자기파멸적인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이가 잠든 새벽, 그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그들의 내면 깊은 어두움과 강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레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인물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왈테르였다.

그는 뱅상과 제레미를 동시에 사랑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했고, 극 중 가장 모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사랑은 깊었지만,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한 죄책감이 그의 마지막에 진하게 남아 있다.

나는 ‘상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란 곧 ‘불완전한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제레미에게 자비를 베푼 인물은 마르틴과 신부 필리프다.

그들의 사랑은 다소 절대적이고 헌신적이다.

신부 필리프의 사랑은, 영화 속 대사처럼 ‘무상의 사랑’이다.

그는 예수를 사랑하듯 제레미에게 자비를 베푼다.


그의 자비에는 경계가 없다.

그는 제레미가 선인이어서, 혹은 그를 사랑해서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다.

그는 생명의 존재 자체에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 마음은 뱅상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뱅상은 이미 살해되었고, 제레미를 고발해도 구원받을 수 없음이 분명하기에,

신부는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뱅상과 제레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푼다.



마르틴의 사랑은 그보다는 대상이 명확해 보였다.

그녀는 제레미를 사랑했고, 육체적으로 탐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강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제레미를 깊이 사랑해, 그를 그저 곁에 두고자 했다.

그녀의 모순된 마음은, 후반부 뱅상의 시신을 수습하는 삽소리가 들렸음에도 제레미를 들이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나는 그 장면에서 마르틴의 홀가분한 마음마저 느껴졌다.

그녀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수도 있고, 혹은 죄책감 그 자체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제레미의 죄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레미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을 보며, 어찌 보면 제레미는 그들이 지닌 욕망의 대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불쑥 찾아오는 욕망을 강하게 거부하고,

또 어떤 이는 욕망을 그저 수용한다.


그들의 사랑은 모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사랑’의 경계를 벗어나 있다.

동성 간의 사랑, 성직자의 금기된 감정, 살인을 저지른 이를 향한 감정 —

이 모든 것은 인물들에게 깊은 죄책감을 낳게 했다.


그래서 어쩌면 제레미를 향한 자비는, 자신을 향한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없는 자들은 파멸에 이르거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알랭 기로디의 영화는 나에게 처음이었지만,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솔직하다 못해,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질 정도였다.

그는 그것이 곧 인간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