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난 주말,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닭 농장에 다녀왔다. 꽤나 넓은 농가였는데, 수천 마리의 암탉들이 자유롭게 흙에 몸을 부비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하는 모습이 꼭 암탉 학교에 방문한 것 같았다. 비록 전기가 감도는 울타리 안에 갇힌 계생(?)들이지만, 50cm 철창에 갇혀 평생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알만 낳다가 죽임을 당하는 닭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닭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이렇게 방사형으로 키우는 방식을 "Free-range"라고 부르는데, 이게 아주 풀어놓고 키우는 방식은 또 아니다. 밤이 되면 좁은 건물 안에 가두어 두었다가 낮이 되면 이렇게 바깥에서 돌아다닐 수 있게 문을 여는 방식을 가리킨다. 유럽에서 닭을 키우는 방식은 오가닉형, 방사형, 외양간형, 닭장형 이렇게 네 부류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가장 최악은 단연 네 번째, 흔히 "배터리 케이지"로 불리는 빽빽한 닭장형. 닭에게도 최악이지만, 병든 닭의 알을 먹는 인간에게도 사실 굉장히 위험한 방식이라, 유럽에서는 2012년 산란계의 배터리 케이지 사육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후 방사형 달걀 공급이 증가하자 사람들의 인식 또한 변화하여, 현재 영국에서 방사형 농장의 비율은 전체 농가의 약 57%로, 한국 12%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흙에 몸을 부벼 목욕을 하는 닭들은 그 상태가 매우 깨끗했다. 먹이 또한 사료가 아니라 농장에서 팔지 못한 야채, 곡물, 과일을 주어 키운다고 한다. 비록 갇혀 사는 신세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삶 아닌가 싶다. 우리도 사실은 사회라고 하는 시스템에 갇혀 사는 건 그리 다르지 않고, 어디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먹는 것도 사는 집도 다르다. 인간이든 닭이든, 어디에 살든 최소한의 공간, 움직일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소비자가 변화해야 산업이 변한다고 말한다. 턱도 없는 소리다. 영국인들의 시민 의식이 높아서 자발적으로 더 비싼 방사형 계란을 사 먹게 되었을까? 유럽의 환경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이곳도 아직도 배터리 케이지의 병든 알을 먹으며 살았을 것이다. 법 제정 이후 수많은 농가에서 방사형으로 산란 방식을 바꾸었고, 가격은 내려갔고, 소비자들은 비슷한 가격이라면 건강에 좋은 방사형 계란을 고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연합의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앞으로 닭 농가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어떤 바이러스가 올까?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다. 동물들에게도 거리를 둘 자유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