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기일을 기리는 한국, 고인의 생일을 챙기는 영국
(한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었다. 이 먼 땅에서 제사는 못 지내도 그래도 간략하게 사진을 액자에 담고 촛불 하나를 올렸다. 한국의 제사 문화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스트레스이겠지만, 외국에 사는 나에게는 전통 문화이자 맛있는 한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로 이해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런 날이라도 없으면 복잡한 세상 살이 속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게 되므로.
영국에는 제사 문화가 없을 뿐더러, 고인이 죽은 날을 기리지 않는다. 대신, 생일을 기억한다. 보통 산소에 가거나 고인이 살았을 적 좋아했던 음식을 가족들과 같이 먹으며 추억을 곱씹는다. 절도 하지 않는다. "조상"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고, 먼저 죽은 사람에게 "예우"를 차리는 문화 또한 없다. 어찌보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영원히 그 생일만을 챙긴다.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심지어 고인이 먹을 밥까지 준비하는 한국에는 귀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약한 영국의 경우, 기도도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비록 통통한 갈빗살이 붙은 소고기를 구하지 못해 얇은 불고기를 쓰고, 종갓집 김치에 냉동 만두, 흰밥을 잘 못먹는 가족들을 위해 접시 위에 덮밥을 만들었지만, 할머니가 오셔서 맛있게 먹기를 기원하며 간소한 저녁밥을 만들었다. 시엄마가 "할머니가 너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것 같니?" 라고 물어보시기에 "아마 욕은 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나름 맛있게 드실 거 같아요." 라고 답했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도 그립네 염병.
이것도 제사라면 제사일까? 한국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문화 중 하나인 제사가, 외국에 사는 나에게는 이렇듯 또 새롭게 다가온다.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고, 영국 가족들에게 한국 전통 문화를 가르쳐줄 수 있고, 맛난 한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