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분기 마지막주 금요일
분기회고를 할 때면 항상 느끼는 건데, 시간 진짜 빠르다. 주간 회고를 할 때면 그래도 시간이 쫌쫌따리로 흐르는 것 같은데 분기회고는 1/4씩 턱턱 움직이니까 회고 2번이면 절반이 지나고 4번이면 1년이 후딱 가버린다.
나만의 루틴으로, 몇 년 전부터 각 분기의 마지막 주 금요일에 오후반차를 내고 1~2시부터 카페에 틀어박혀 오후 내내 분기 회고를 한다. 이렇게 유난을 떠는 이유는, 분기에 한번 정도는 이렇게 몰입해서 뒤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는 브레이크 포인트로 삼기 위해서다.
이번 회고까지는 굵직한 이벤트 기준으로 진행하고, 다음 회고부터는 철저히 데이터 위주의 회고를 진행하려 한다.
지난 회고에서 언급했듯 1분기는 퇴사와 함께 마무리했다. 상호합의 하에 마무리지었긴 하지만 기분이 나쁜 점도 있고 고마운 점도 있어 기분이 오묘한 이벤트였다.
2분기의 하이라이트는 극적으로 조인하게 된 현재 회사다. 이곳은 내가 전전 직장 동료에게 항상 가보고 싶다고 했던 조직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애용하던 프로덕트이고 독보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플랫폼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기술도 뛰어나고 풍문에는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가 포지션이 열린 것을 보고 지원을 하고, 합격까지 한 2달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들이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극적으로 출근날짜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재산이 우하향한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간 돈을 벌지 못하고 쓰기만 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그래도 이것저것 수입이 조금씩은 있었고, 지출을 관리하며 하향 그래프의 기울기를 평평하게 다듬었고 지금은 다시 상향 중이다.
겉으로 보면 위기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게 이번 분기 수입 항목이다. 2분기에는 직장을 1달밖에 안 다녀서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년부터 직전직장 갈 때까진 실업급여를 수령했고, 직전 직장은 3개월을 다니며 받은 월급과 나오면서 위로금까지 수령했기 때문에 큰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약소하지만 멘토링비도 꼬박꼬박 입금되어서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직에 성공하면서 수입 파이프라인의 큰 축이 무너지진 않게 되었다.
그래서 분기 수입 평균을 내보면, 수입의 측면에서는 딱히 부족하진 않았다.
수입이 없으면 지출이 위축된다. 경제학에서도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시민들의 행동패턴이다. 나에게도 해당된다. 모아둔 돈이 있기 때문에 먹고살 걱정은 없었지만 심리라는 게 참 그렇다. 조금이라도 싼 거 사려고 하고, 웬만해서는 안 사려고 하는 방향으로 소비 성향이 바뀐다.
하지만 이번 분기 총지출이 어마어마하다. 이번 회고를 통해 조목조목 따져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좀 있었다. 일단 가족행사가 많은 달이 있었다. 사정이 좀 있어서 가족 행사에 내가 내는 돈이 많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해서, 굳이 아끼고 싶지 않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해외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보름씩 다녀왔기 때문에 돈이 꽤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가서 되이려 많이 쓰지 않았지만 여행 자체가 돈이 많이 들긴 한다.
고무적인 점은, 6월은 안정적으로 예산 내에서 소비를 했다는 것이다. 식비, 생활비, 데이트비 등 모든 항목에서 예산 내 소비를 했고 조금 빠듯하게 줄이긴 했지만 전혀 불편하진 않은 수준이라 이 정도 소비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괜찮았던 항목이 투자다. 증권사 PB를 하는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이번 분기동안 투자를 했는데, 결과가 꽤 좋았다. 과거에 몇 번 데어봐서 주식은 쳐다도 안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논리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떤 결과가 기대된다라고 하는 설명에 적정한 가격이라 생각할 때 매수하고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때 매도했다.
결과적으로 타율이 매우 좋았지만, 나는 돈을 정말 적게 넣었다. 잘 먹어도 몇십만 원 정도 먹을 수준에서 깨작여서 큰돈은 벌 수 없었다. 0 하나면 더 붙여서 매수할걸 ㅎㅎ. 대신 사람들이 어떻게 자산을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경험으로 주식을 계속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만, 친구의 논리가 납득이 가면 다시 거래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만큼의 지식이 있었으면 좋겠고.
이번 분기에는 배움을 많이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여러 요인이 있었다.
일단 이직에 원씽하고 있던 터라 다른 학습에 여유를 분배할 수 없었다. 이직이 끝나고 나서는 미뤄둔 일들을 하기 위해 학습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했던 학습들은 아래와 같다. 공통점이라면 현업인 개발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꾸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글을 꽤 많이 썼다. 개인적으로 개발 외적인 글을 많이 쓰고 싶었는데, 여행기라던가 리더십 혹은 회사생활에 관한 글들 말이다. 나는 만족할 만큼 썼다. 그 점은 아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주 1회 발행이던 2회 발행이던 딱 정해놓고 정기발행을 하고 싶은데 시스템이 없다 보니 이런 게 잘 실행이 안된다.
이 문제는 지난 회고 때도 발견했던 것인데 아직도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사실 애플 미리 알림 서비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봤지만 잘 동작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돈이나 시간을 재화로 액션을 강제하는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른 만들어야지..!
독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이 못 읽었다. 권수로 따질게 아니긴 해도 읽은 책 권수가 너무 적긴 하다 ㅎㅎ. 여행 가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의지는 있었지만 우선순위에도 좀 밀렸고, 책이 주는 임팩트가 떨어지는 시기를 겪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외국어 공부 생각은 1도 없던 내가 갑자기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후술 할 여행이 매우 큰 영향을 줬다. 치앙마이 라이브쇼 펍에서 내 옆에 앉은 외국인과의 즐거운 대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죄책감, 일본의 작은 바에서 만난 바탠더와 거의 반나절을 같이 놀았는데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그 아쉬움.
그래서 영어랑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다른 우선순위를 조금 챙기다 보니 밀리긴 했는데, 2분기 주요 학습 계획에 넣어야겠다.
1분기 회고에서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으로 "조바심"에 약하다는 점이 있었다. 그 조바심이 나를 낙성대 5평 원룸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뒀던 것 같다.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게 해외여행이다.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될 대로 돼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내가 정말 간절하게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다면, 그 이후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럴 땐 그냥 다 잊고 놀 수 있는 여행이 최고였다.
처음으로 선택한 건 치앙마이다. 거의 보름 넘게 다녀온 것 같은데, 왜 한 달 살기를 여기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업무를 하기에 손색이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이나 냉난방, 시차, 식음료 문화 등 태국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괜찮다고 하더라. 밤에는 치앙마이만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파릇파릇한 분위기가 나에게 꼭 알맞다.
나는 일까진 아니지만 다수의 면접과 개인 공부, 글쓰기 등을 진행하며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와서 일을 해야지. 풀 리모트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치앙마이 여행기를 묶어 1년 만에 브런치북을 하나 발간했다.
이직이 결정 나고는 당분간 가기 힘들 해외여행을 가야겠다 싶었다. 가장 무난한 일본을 골랐고, 그렇다고 무난하지 않은 코스이길 원했다. 그래서 북규슈 기차여행을 테마로 다녀왔다. 그냥 다양한 종류의 기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얻기보다는 이동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왔다. 맛있는 음식과 환상적인 날씨를 즐긴 건 덤이다.
북규슈 기차여행기도 브런치북으로 묶었다.
연애를 시작했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분기 회고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내용이라 조그맣게 적어본다. 행복하다.
드디어 면허를 준비한다. 시험 접수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도통 면허를 왜 따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으니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뤄왔다. 안타깝게도 이번 동기부여는 나이다. 30이 넘었는데도 면허 하나 없다는 게 꽤 부끄럽게 다가오길래 시간도 있겠다 면허를 취득하기로 결심한 거다.
일단 필기는 붙었다. 기능과 도로주행만 붙으면 되는데, 딱 이 타이밍에 새 직장에 출근하게 되어 잠깐 멈췄다. 이사까지 하고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아마 3분기에는 하지 않을까.
새 회사에 맞추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계약만 하고 입주는 아직인데, 한 2주 뒤쯤에 할 예정이다. 낙성대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지만 방이 너무 작다. 좀 큰 방을 낙성대에 다시 구할 수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이사하는 김에 회사 근처로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번 우선순위는 0순위가 크기였다. 지금 집이 정말 좁다. 여기서 살면서 계속 든 생각은, "내가 이렇게까지 작은데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였다. 솔직히 벌만큼 벌고 소비를 엄청 제한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람도 아닌데 삶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그나마 무뎌져서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소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되었을 때 환경을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 가는 집은 투룸이다. 그렇다고 가격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내 기준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정했고, 그만큼 포기할 건 포기했다.
이번 분기는 임팩트가 강렬한 일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굴곡이 심해서 더욱 놀랍다. 보통 이런 빅 이벤트들은 1년에 1번 일어날까 말까인데 이번 분기에 몰렸나 보다.
이직한 회사의 복지 중에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오후 반차를 주는 게 있어서 이제 분기 회고에는 반차를 쓰지 않고 진행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직한 회사에서 Show&Prove 하는 게 0순위 과제다. 오래 다니고 싶은 조직이라 얼른 이 조직에 녹아드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은 지속가능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집을 가꾸고 재무적으로 안정화되는 것이다. 멀티파이프라인을 갖출 생각은 이번 분기엔 없고, 수입과 소비를 설계해서 최소 저축 금액을 항상 지키고 어느 정도 투자를 병행해 볼 것이다.
다음 분기 회고는 철저하게 숫자로 검증하고 싶다는 니즈가 있다. 회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주단위 회고를 철저하게 이행할 생각이다. 어느 정도는 엄격한 장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회사의 회계부, 감사부, 전략부가 있듯 나도 그러한 부서를 내부적으로 둘 것이다.
여러모로 다음 회고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