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갈팡질팡 치매동반기
A로부터 전화가 왔다.
A는 아버지가 치매 초기 단계라 가끔씩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는 사이다. 전날 밤에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며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해서 부녀는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내용이 너무 기가 막혀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다.
A의 아버지는 데이케어센터에서 마음에 드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살림을 합쳐서 같이 사시고 싶다고 딸에게 고백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고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걱정만 하지 말고 아버지가 다니는 데이케어센터에 의논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리고 나도 엄마가 다니는 데이케어센터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 달에 있는 자조 모임에 갔을 때 상담 선생님께 이 경우를 물어봤다. 자조 모임은 데이케어센터에서 하는 보호자들의 모임이다.
"혹시 그분이 싱글이세요?"
상담 선생님의 첫 질문이었다.
"당연히 싱글이겠죠? "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질문이었다.
집에는 부인이 있는데도 데이케어 센터에 와서는 다른 분에게 자꾸 결혼하자고 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에 무척 당황했지만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결혼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듯 싶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어찌하냐고 조언을 구했더니 경우마다 다른데 한분이 센터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 그냥 없었던 일처럼 잊히는 일도 있다고 한다.
엄마가 다니는 센터에서도 가끔씩 그런 로맨스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을 했고 할아버지는 약속 장소에 나가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데이트 장소에 보호자 없이 나가기까지는 굉장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할머니는 약속한 것을 잊어버려서 나가지 못해서 그 데이트 사건은 불발로 끝났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하여 두 사람의 약속을 센터에서까지 알게 되었을까? 아마도 할아버지가 공개적으로 할머니에게 따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애의 감정은 어느 나이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일까?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럽기도 했다.
보통의 연애 감정이라면 남의 연애일지라도 설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치매 노인의 연애 감정에 대해서는 참 복잡한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실제로는 전화를 본인이 걸지도 못하면서도 가족에게 부탁을 해서 전화를 해서는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전화를 연결해 주는 가족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혹시 우리 엄마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하면 나는 화를 내게 될까? 아니면 망설임 없이 전화를 하게 될까?
A의 아버지는 센터에서 영화를 보거나 할 때면 두 분이 손을 잡고 보기도 하신다고 한다.
A는 아버지가 결혼을 하시겠다고 하시지 않는 한 아버지의 감정을 존중하기로 결정을 했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맘에 드는 분이 있어서 그때라도 즐거우면 그것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A는 참으로 대범한 인간적인 결정을 한 것 같다. 나는 A의 판단이 '나의 아버지라는 가족관계보다는 아버지를 한 남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 정도 지났다. A의 부모님은 금슬도 좋은 편이 셨는데 내 입장이라면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을 듯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그곳에서도 이런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 말이 자신이 일하는 곳은 여성 즉 할머니들만 계신 곳이어서 그런 일은 없지만 할머니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남녀가 같이 있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인 간의 사랑이야기가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도 생각이 났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년도에 제작된 영화였다. 그때도 그 영화가 화제가 되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념을 깨는 영화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녀 간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라면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이런 감정은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