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길을 잃어버리는 초기 단계에 엄마 찾는 방법.
치매의 단계는 시간을 구별하지 못하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종국에는 가족을 못 알아보는 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물론 내가 이론적으로 공부를 한건 아니고 병원에 진료를 다니면서 얻어들은 지식이다. 우리 엄마도 대체적으로 이런 경로로 진행된 거 같다. 배회는 길을 잃어버려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걷는 것을 말한다.
생전 안 하던 효도를 한다고 엄마를 모시고 엄마의 동창 모임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고향이 황해도 곡산이어서 6.25에 남쪽으로 내려오신 피난민이다. 엄마의 동창들은 원래는 남, 녀 고등학교가 따로 있었는데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셔서 이제는 남녀를 합쳐서 하신다고 한다. 할머니들도 할아버지들도 아는 분들도 많다.
동창이기도 하지만 고향 사람들이니 무슨 무슨 모임에서 뵙기도 하고 집으로 놀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한분이 " 네가 딸이로구나, 엄마가 모임 장소를 못 찾아와서 그동안 만나지를 못했는데 반갑구나" 하시는데 나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마음속으로 서늘한 강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시작이 된 건데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한 집에 같이 살아도 잠자는 시간을 빼면 같이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되고 그것도 일부러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게 된다.
한 번은 이북 오도청에 모임이 있어서 가실 때는 내가 그곳까지 태워드리고 집으로 오는 버스 편을 이야기했는데 그날 저녁에 물어보니 아무래도 걸어서 오신 거 같았다. 버스로도 20분 정도 걸리고 걸어서는 한 시간도 더 넘게 걸릴 거리에 중간에 북악 터널도 있었다. 어쩌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바느질을 잘해서 내가 어려서부터 웬만한 옷은 다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간단한 옷이 한벌 필요해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피에로가 입을 의상이어서 바지 둘레가 보통 사람보단 훨씬 큰 형태였는데 다른 때면 전화로 이거는 뭔가 이상하다고 물어봤을 텐데 그냥 아무렇게나 꿰매 놓았다. 그때 나는 화를 내기만 했지 이상하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것이 전조현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치매 초기에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치매 안심센터에서 하는 기억 키움 교실의 강의 시간은 10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난다. 9시 정도에 집에서 출발하면 버스를 타고 보건소 앞에서 내리면 되는데 문제는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이 버스를 타보니 카드를 리더기에 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주머니에 교통비 1300원을 넣어드리면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는 가신다.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무리하게 사용을 강요하는 건 양쪽이 다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가는 것도 편안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운동 삼아 걸어서 오시는데 같이 걸어보니 보통 사람이 걸으면 삼십 분이면 되는 거리를 한 시간 반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같이 걸어 본 이유는 아무래도 길에서 방황을 하는 것 같아서였다. 길을 잃으면 어떤 길을 다니는지 알아야 찾을 수 있을 듯싶었다.
12시에 끝나면 적어도 1시 반에서 2시 사이에는 집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집 전화는 안되고 핸드폰도 받지를 않는다. 세시에 받을 때도 있고 더 늦게 받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집에 있으면서도 전화 소리를 못 들어서 그렇 수도 있다고 생각도 했다. 그래야 그나마 위안이 되니까.
그때의 나의 오후 일과 중에 하나는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하는 것이다. 3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는데 그 불안감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불안한 마음은 점점 깊어진다. 그날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갔는데 역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다시 집으로 와서 우왕좌왕을 하다 아홉 시가 넘어서 이젠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 전화번호를 찾는데 순간 아파트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파트 현관의 어두운 불빛 속에 입술이 말라서 하얗게 된 엄마가 서 있었다.
긴장, 피곤함, 두려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빈 물병을 들고 있는 엄마는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9시간을 혼자서 거리를 헤맨 것이다.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래도 그때는 현관 비밀번호도 혼자서 누를 수 있었다.
그 후로 동네 파출소에 신고해서 찾은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경찰차도 타보고 파출소에서 민원이 생겼을 때
어찌해야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거리를 헤매는 엄마를 경찰 아저씨가 모시고 오는 일도 있었다. 그날은 비를 맞고 걸어가는 할머니를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이 '사는 곳이 어니냐" 물어보니 엉뚱한 동네라서 경찰차로 모시고 온 것이라고 했다. 그냥 길을 걸어가는 할머니가 길을 잃고 배회를 하는 건지 그냥 행인인 건지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회하는 사람을 더 찾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겨울에는 버스를 태워드리고 끝나는 시간에 보건소 앞에서 기다려서 같이 오기도 했다. 문제는 집에 혼자 있다가 밖으로 나가서 집을 못 찾는 경우이다. 결국에는 복지부에서 배회하는 노인을 쉽게 찾기 위한 고유 번호를 받고 스티커를 받아서 옷과 가방 등에 부착을 했다. 또 노인 복지 기관에서 지원해 주는 위치 추적기를 받았다.
스마트 폰 하고 연결이 되어서 이전에 비해서 훨씬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외출을 해서도 위치를 알 수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위치 추적기는 경찰서에 신청하면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지급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 조건은 배회를 한 기록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계처럼 생겨서 팔목에 찬다. 실제로 시계 기능도 있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있다. 물론 치매인 엄마에게는 모두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나에겐 정말 유용한
도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