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치매는 유전일까?
외할머니도 치매로 사 년 정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엄마도 치매, 이즈음 되면 나도 치매일 확률이 무지하게 높다는 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부모님이 치매인 경우 누구나 떨면서 상상하는 가장 많은 경우가 치매는 유전일까? 일듯 싶다. 불안하면 알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은 일단 엄마를 모시고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주치의한테 물어보는 거였다. 의사 선생님은 약간은 미안한 거 같은 미묘한 웃음을 띤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전문의에게 직접 확인을 받으니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물려줄 게 없어서 이런 걸 물려주나.
그 이후로 엄마의 상황은 나의 미래가 되었다.
치매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혈액 순환에 좋다는 오메가 3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를 물게 한다는 아스피린을 주기적으로 먹어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치매 관련 책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하다. 내가 자주 가는 서너 군데의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도 서가 두줄을 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이건 의학 전문 서적은 아니고 일반인을 위한 치매 관련 서적에 관해서다. 책은 주로 의학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치매를 앓으면서 경험한 치매 간병기가 많다. 알기 쉽게 정리된 치매 일문 일답 같은 책은 한 권 정도 있으면 궁금할 때 찾아보면 심리적인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일단 내가 읽은 책 속에서 알게 된 지식으로는 치매는 결론적으로 유전적 요소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건 참으로 슬픈 일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매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부모님이 진단을 받은 경우라고 가정한다면 대략 오십 대 후반에서 육십 대 초반의 나이일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인생도 우울해질 판이고 게다가 부모님의 간병도 해야는데 엎친데 덮친 경우로 치매가 유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거의 날벼락 수준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내용을 공유하자면
1. 치매 일문일답의 경우 (P60~p62)
늦은 나이에 발병하는 흔한 형태의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 중 50~60퍼센트 정도는 25개 이상의 유전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유전학이 대단히 복잡해지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유전자 주의 하나인 'APOE 유전자'가 이런 유전적 위험에 절반 정도 기여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나머지 25개의 정도의 유전자가 기여하고 있습니다. APOE 유전자는 3가지 형태가 있고 각각 2,3,4라는 꼬리가 붙어 있습니다. 이 각각의 형태는 '정상적'인 유전자 변이형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각각의 부모로부터 APOE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기 때문에 APOE 유전자의 조합은 6개가 가능합니다. 즉 우리들 각자 2/2,2/3,2/4,
3/3,3/4.4/4 중 하나의 조합을 가지고 있습니다.
4번 형태의 유전자('APOE 4 또는 APOE ε4'로 표기)는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높입니다. 그래서 2/4나 3/4 같은 조합을 가진 사람은 4번 형태의 APOE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2.5배에서 3배 정도 높습니다. 4번 유전자를 2개 물려받은 사람(4/4)은 4번 유전자가 하나도 없는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12배 정도 높습니다. 2번 형태의 유전자가 실제로는 알츠하이머병의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훌륭한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놀랍게도 APOE4 유전자가 알츠하이머병을 100퍼센트 확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도 많고 APOE4 유전자를 2개 가지고 있지만 알츠하이머병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의 2/3 정도가 유전적이라면, 대략 1/3 정도는 비유전적, 혹은 환경적 영향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두고 '유전적', 아니면'환경적'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선천적 대 후천성' 논쟁 또는 '유전자 대 환경' 논쟁으로 흔히 불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흔한 질병들은 이런 이분법적인 모형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질병은 유전적 위험요인과 환경적 위험요인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야기되는 것입니다.
(※ 출처: 존스홉킨스의대 교수의 치매 일문일답,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문화원, 2021년 7월 20일 발행 참고)
2. 치매의 모든 것 (P137)
이 책에는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책의 일부라도 무단 복제 할 경우 처벌한다고 하여 아쉽게도 그림을 인용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APOE4 형이 없는 사람들의 평균치매 발병 나이가 84세인데 비해 1개를 가지면 75세, 2개인 경우 68세 정도에 치매가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APOE4 형을 가진 사람은 기억력 감퇴가 60세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유전자형에 의한 발병보다 더 진행 속도가 빠르다
(※ 출처: 치매의 모든 것, 법문 에듀케이션, 저자 : 최낙원)
내가 내린 결론은 치매는 노화가 큰 원인이고 결국은 오래 살아서 만나게 되는 현상인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각종 검사를 통해 무슨 이유로 죽게 되는지를 알고 죽게 되는 현실과 비슷하다.
나는 이미 60대를 지나가고 있고 다행히도 아직은 치매 증상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으니 APOE4 형은 아닌듯하다.
어느 날 30대 초반의 딸이
"엄마 나 화투를 배울까 봐"
"왜?"
"화투가 치매 예방에 좋대"
"책을 많이 읽으면 치매에 안 걸린다며? 할머니가 책 많이 안 보니?"
"아! 그럼 그것도 아니네....."
젊은 딸아이도 치매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딸이 대학생이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오바마 자서전을 사 온 적이 있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던 해이니 아마도 2009년 정도였을듯하다. 그 책은 베개로 쓸 수 있을 만큼 두꺼웠는데 그 책을 제일 먼저 다 읽은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그 책을 읽고 오바마 아버지가 목사라고 해서 나는 혼자 웃었다. 책을 읽으면 뭐 하나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만약에 그게 전조 현상이었다면 우리 집의 경우에는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마도 5~6년 후 정도에 진단을 받기 위해 검사를 하기까지 또 2~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연세의 어르신들은 1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의사 선생님의 이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조금 일찍 치료를 시작했다면 엄마가 더 건강한 노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여러 종류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나를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자"였다. 결국 혈액 순환이 잘되면 뇌에도 계속 자극이 되고 치매에 걸릴 확률도 줄어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