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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Tina Feb 07. 2023

가장 끔찍한 영웅 서사

<액트 오브 킬링> 조슈아 오펜하이머, 크리스틴 신 감독

다큐멘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을 토대로 하나의 인물이나 사건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정된 이미지 없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며, 감독은 그저 특정 시점을 따라갈 뿐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군부들은 반공을 명분으로 불법 무장 단체들을 섭외하여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학살했다. 감독은 사건의 가해자였던 프레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레만들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감독이 가졌던 의문과 비슷하게, 그들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이를 분석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글은 앞선 다른 글보다 다소 감정적으로 작성되었다. 이성적으로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분석하고 판단하는 행위가 불가능할 정도로 잔혹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저지른 행위는 분명한 살인 행위였고, 인간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감독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당시, 촬영을 거부하는 피해자들과 달리 가해자 프레만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감독은 대규모 학살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프레만들은 기존 선전 영화를 대신할 자신들만의 새로운 영웅 서사를 담은 영화를 제작한다. 외부의 개입 없이 각본, 촬영, 배우, 편집까지 모두 그들의 몫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살인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투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소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카메라는 한 극장 프레만의 시선을 따라간다.


안와르 콩고, 인자한 할아버지이자 국민적 영웅, 하지만 대학살의 주범.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이다. 이전에는 암표를 팔며 살다가 공산당원을 살해하는 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은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 역시 당시의 기억을 즐겁게 떠벌린다. 하지만 안와르는 초반부터 사건에 대한 죄책감을 호소한다. 그는 사건의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악몽을 꿔왔고, 그 때마다 자신의 기억을 춤, 노래와 함께 즐겁게 포장한다.


이러한 필사적인 포장은 그들의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들이 재현하는 살인 행위가 너무 잔인하게 보인다며, 그들은 영화에 뮤지컬, 서부 영화, 신앙적 요소를 포함한 온갖 생뚱맞은 장면들을 추가한다. 시나리오 안에 있었던 안와르의 악몽 역시 판타지 장르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안와르가 실제로 악몽을 꾸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이상과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악몽은 실제로 더욱 고독하고 견딜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잔인성을 덮기 위해 전전하지만, 촬영한 영상을 곧바로 TV 화면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마주한다. 작품 내에서는 전선으로 사람의 목을 둘러싸 숨통을 조이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온다. 초반의 안와르는 자신의 경험담처럼 그 행위를 말할 뿐이지만, 이 장면을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TV 화면으로 재확인하며 침착했던 감정은 서서히 붕괴된다. 안와르의 악몽은 계속되고, 이를 다른 프레만에게 이야기하지만 상대방은 '단순히 의사에게 찾아가면 되는 신경 장애'라며 안심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점차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변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왜 꼭 공산당 학살에만 집중하는 거죠? 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을 죽였는데 누가 처벌됐나요? 처벌하라 그래요. 이 일을 들추는 건 나한테는 도발이예요. 세상이 전쟁을 계속하길 바라면 난 준비됐어요. 우리가 싸우길 바라면 싸워야죠."


"공식적인 사과를 안 했잖아. 우리 말고 정부가 사과해야 해. 그럼 그게 진통제처럼 고통을 덜어줄 거야. 용서도 하고."



가해자들은 살인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다같이 노래를 부른다. 이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적을 무찌르고 싶은 심리인지, 살인의 공포를 은연 중에 떨치기 위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저 이러한 장면들이 현실이기에 더욱 이질적이다.


안와르의 죄책감은 공산당원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을 방화하는 장면에서 더욱 심화된다. 배역을 맡은 여자들과 아이들은 축 늘어진 채 울고, 안와르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 이후 안와르는 직접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본다. 자신의 목에 전선이 둘둘 감기자 그는 엄청난 공포감을 느낀다. 촬영은 중단되었고, 안와르는 '피해자의 심정을 그제서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출된 그의 상황과 실제로 죽을 위기에 처한 피해자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안와르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홀로 자신의 범죄를 구현한다. 그리 좋지 않았던 표정과 함께, 그는 속을 게워낸다.

죽일 수 밖에 없었다며 변명하다가도 감정에 못이겨 끊임없이 게워낸다.






감독은 가해자들이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파악하려 했고, 다큐멘터리가 따라간 안와르의 시선 끝에는 분명히 죄책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까지 안와르를 포함한 가해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의 행위는 철저히 숨길 수도, '이해'라는 단어로 포장할 수도 없는 분명한 악이다. 다큐멘터리는 뒤늦은 후회로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죄질은 절대로 끝낼 수 없다.


그들을 더욱 악인으로 만든 것은 그것을 가능케 했던 권력과 시스템이다. 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쉽게 제안을 승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제로 국가 안에서 영웅적인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프레만들은 국가의 보호 아래서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던 참이었다. 국가는 그 날의 일을 숨긴다. 인도네시아의 선전 영화는 피해자들을 악인으로 취급했고, 국영 방송은 가해자들의 살인 경험담이 화면에 그대로 송출되는 과정에서도 그들을 칭찬한다.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진실을 알리지 않는 세태는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된다. 프레만과 비슷한 역할이었던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국가의 영웅이 되거나, 그저 어쩔 수 없이 행위를 따르는 이들이거나, 무자비한 살인자로 인식된다. 우리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국가를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흔히 나오는 영웅 서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안와르는 영화 업계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영화들을 접했다. 그의 살인 행위는 서부 영화와 갱스터 무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안와르는 자국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영화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의 살인은 그간의 동경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국가를 위한 충성심에 의해 더욱 잔인한 형태로 발현된다. 그렇다면, 왜 미디어 속 영웅들은 모두 폭력을 저지르는가. 그들의 폭력은 악에 대한 응징으로만 비춰왔고 희생자들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더욱이도 연출된 상황 속에서는 선악이 구분되지만, 현실은 이러한 구분마저 없기에 안와르가 저지른 행위들은 영웅적인 면모로만 치부될 수 없다.






프레만들은 전쟁의 승리자, 영웅, 신이 되고자 한다.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폭포와 함께 그들이 만든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영화에서의 안와르는 전지전능한 신으로 등장하고, 피해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그에게 '날 처형하고 천국으로 보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대사를 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판타지 범벅이다. 그들은 신이 되기 위해 진실을 가렸다.


하지만 진실은 007 같은 액션 영화도, 모두가 바라는 해피 엔딩도 아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우상시하고 악한 부분은 도려내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악한 부분들을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점차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들이 숨기고 도려낸 부분들은 끝내 안와르의 구역질과 함께 드러났다. 뱉어낼수록 더욱 추악해진다. 악인들이 그려낸 자화상은 이러한 형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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