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참 재미나게 보고 있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병원이라고 하면 애 넷을 키우면서 내 집 드나들 듯 자주 갔던 곳이고 또 잊을 수 없는 곳이기에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예전 병원 드라마가 의사들의 야망, 연애 뭐 이런 게 중심이었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환자들의 이야기도 잘 어우러져서 그냥 병원의 한 단면이 잘 녹아 있는 거 같아서 보기가 좋았다.
1 시즌도 좋기는 했는데 2 시즌 이야기들은 왠지 나의 병원 생활하고도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서 더 몰입하면서 보고 있는 중.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은지와 민찬이 엄마.
사실 눈물도 말라서 웬만하면 울지 않는 나인데, 이 두 분이 복도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엉엉 울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고 둘 다 너무 잘 되어서 부럽기도 하고.
백병원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전해서 처음 머물렀던 병실은 7 병동 호흡기 내과 쪽.
나연이가 불명열이었고 폐도 살짝 좋지 않아서 폐렴일까 하여 그쪽에 머물렀었는데 2일쯤 되던 날, 병실에서 통곡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냐고 가서 물어보니 아이가 신장이 안 좋아서 오래 투석하다가 작년에 신장을 이식받아 잘 지냈었는데 폐렴으로 인해 이식 거부 반응이 생겨서 다시 제거해야 한다고. 그러면 이제는 이식 전과 달리 매일 투석을 받아야 하는데 부산에는 그렇게 할 병원이 없다며 어떡하냐고 엉엉 우시는데 같이 위로하고 같이 울어드렸었다.
그다음 날 나 역시 나연이가 혈액암 의심으로 암병동인 8 병동으로 이전하고 담당의사도 암전문의로 교체되는 벼락 통보를 받는다.
그날 나는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주먹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밤새 울었다.
서로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아까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신랑에게 했다.
5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병원에서의 이야기는 신랑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다. 기억을 복기하는 것도 가슴이 아파서 그냥 묻어두고 있는 게 더 낫기도 하기에.
내가 만났던 의사들 중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것 같은 의사는 없었다. 아니 한 분, 나연이에게 주사를 놔주시며 아픈 거 잘 참았다고 하트를 그려 주셨던 인턴 선생님 정도.
대부분은 권위적이고(인턴과 레지던트를 주르르 끌고 다니셨음.) 사무적이고(자기는 이런 시술 눈 감고 한다며 물어보는 내게 짜증 냈음) 불친절했다.
저렇게 따듯하게 말을 걸어줬었다면 그게 또 큰 위로가 되었을 거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MRI를 찍겠다며 침대를 끌고 뛰어다닐 게 아니라 인사를 나누게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심장은 멈추었지만 아직 따듯하던 나연이와 많은 인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사람의 청각이 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한다는 학술이 있다.)
어떤 이들은 2 시즌이 너무 축 쳐지고 별로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런 이유로 더 많이 와닿고 공감을 하는 거 같다. 그리고 나오는 노래들 역시 가슴을 파고드네.
1 시즌에서 그대 고운 내 사랑과 바람이 부네요가 좋았다면 2 시즌에서는 이젠 잊기로 해요와 괜찮아 잘 될 거야 가 좋았던 거 같다. 특히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는 치트키가 맞는 거 같다.
어느 장면에서건 이 노래가 나오면 마음이 아련해지네.
이제 반 정도 남은 에피소드들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모르지만 기대가 된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의사들이 나오는 걸 보면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언젠가는 그런 의사들을 만날 날이 오겠지.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