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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Jun 04. 2024

디어 마이 네임


‘발로 차는 새’는 던바와 조금씩 교감을 시도했다. 경계심을 풀지 않았던 ‘머리에 부는 바람’도 던바를 동료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주먹 쥐고 일어서’는 던바와 깊은 사랑에 빠졌고, 늑대와 뛰노는 던바를 보던 부족들은 그에게 진정한 이름을 지어 줬다. ‘늑대와 춤’을 이었다.


무슨 얘기인지 갸우뚱하다가 마지막 이름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오래전 영화 「늑대와 춤을」의 줄거리를 두서없이 옮겨 봤다. 내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니 설령 영화를 못 봤어도 상관없다. ‘발로 차는 새’, ‘주먹 쥐고 일어서’, ‘머리에 부는 바람’이 뭔지는 궁금할 거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 제목 같기도, 짓다 만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한 이 표현들은 생뚱맞게도 사람 이름이다. 영화 제목 「늑대와 춤을」도 주인공 이름이었다. 멋스럽긴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부르라고 있는 이름이 이렇게 고생스러워서야 되겠느냐 싶기도 하다. 인디언식 이름이다 보니 그렇다.


인디언들의 세계는 무수한 이름으로 차 있었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을 존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품어주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대화하고자 했다. 폭풍우가 부는 날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아들’, ‘힘 있는 빗방울’이 됐고, 친구는 ‘나의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태어난 해, 월, 시간에 따라 이름이 정해졌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한때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검은 말 아래에서’가 내 인디언식 이름이다. 뭔가 철학적이고 심오한 의미가 담긴 듯하면서도 볼일 보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다(말 아래 기어들어가 뭘 하라는 건가). 특이하게 이름에 성이 없는 것은 각자 다른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하나의 가족으로 여겼음을 상징한다. 그들의 인사말 “미타쿠예 오야신(Mitacuye Oyasin)!”은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인디언들의 이름은 현실적, 현재형에 맞춰져 있었다. 대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들은 앞날을 고민하지 않았다. 사냥감이 넘쳐나고 비가 내리며 태양이 빛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삶과 자연의 조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우리 이름은 미래지향적이다. 희망과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름값 하며 살라는 얘기다. 선조들은 사물이든 사람이든 허투루 이름을 짓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그 정성이 묻어난다. 궁궐이나 사원, 누각과 정자의 편액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거닐지 않아도 그곳의 반듯함이 전해오고, 만나지 않아도 그들의 해학과 흥이 느껴진다. 사물들 이름이 이럴 진데 인사유명이라는 인명은 어떠했으랴. 부모들은 자식을 낳으면 작명인을 찾아 이름을 받았다(요즘은 태명이라는 걸 지어놓고 뱃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아이와 대화도 한단다). 과거엔 귀한 독자라도 태어나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편한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곤 했다. 여기서 이 이름, 저기서 저 이름을 지어주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그 이름이 나왔다. ‘김수한무 거북이와두르미 삼천갑자 동방삭...’ 지어낸 이야기는 희극이나 결말은 비극이다. 넘침이 모자란 만 못하다는 교훈이다. 이름을 지어 주다라는 한자 ‘명명’은 목숨 명(命)에 이름 명(名)자를 쓴다. 목숨과 이름이 한 낱말에 붙어있다는 건, 이름을 함부로 짓거나 부르지 말라는 깊은 뜻 일게다.


조선시대에 ‘피휘(避諱)’라는 제도가 있었다. 죽은 사람 이름(피)에 사용했던 글자는 쓰지 않는다(휘)는 것인데 왕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국휘(國諱), 집안 조상 이름을 피한다는 가휘(家諱), 성인들 이름을 가져다 쓰지 않는다는 성인휘(聖人諱)‘등이 있다. 특이한 점은 왕들의 이름에는 자주 쓰는 글자가 들어있으면 나라에 큰일이 생긴다고 해서 일부러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골라 이름을 짓되 주로 외자를 쓰도록 했다. 같은 이름자를 백성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 많아지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정조 이산, 세종 이도, 영조 이금 등등 친숙한 왕들 이름이 모두 외자다. 이름 짓는 일이 이렇게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을 보면서 새삼 이름의 귀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름이 지나치게 친숙하다 보면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게 된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상품처럼 구매 욕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박 욕구를 무한히 자극하는 이름으로 말이다. 내 이름이 그렇다. 본디 '얼굴(용)이 빛나다(환)'는 이 출중한 이름이 성과 어울리다 보니 어그러져 버렸다. 학창 시절 때다. 담임 선생님이 조회 시간에 훈시하면서 한마디 하셨다. “그러니까 우리 반은 늘 조용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한, 조용환. 야! 조용해야하는 조용환, 선생님이 너 부르신다. 깔깔... 흐흐... 하하”

그 후 그런 경험이 다반사였고 내 이름이 아무나 널리 편하게 부르라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름으로 전락해 버렸으니 그 스트레스야말로 다해 무엇 하랴. 커가면서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는 점점 심해졌다. 얼굴이 빛나기는커녕 더 어두워져 갔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새 이름을 하나 더 얻었다.


‘정빈(正彬)’. 바르고 아름답게 빛나다는 의미였다. 멋스러움이 그야말로 나를 위해 태어난 이름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한 번만 불러달라고 졸랐다. 멀리서 “조정빈~, 정빈아~ ”이라고 부르기도 하면 주인이 부르는 강아지처럼 쏜살같이 달려갔다. 특히 끝 자인 ‘빈’자가 강하게 유혹했다.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겼고, 뭔가 빨아드릴 듯한 흡입력이 있었다. 아무래도 바르게(정) 살기보다는 빛나게(빈) 사는 게 더 쉬울 듯싶었다('환'도 그렇고 나는 분명 빛나게 살아야 할 운명인가 보다). 바르게 사는 건 천성 문제라 주어진 성격대로 살아야겠지만, 빛나게 산다는 건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리라는 확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견지명이었다. 현빈, 원빈이 성질대로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빛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독일 속담에 '좋은 이름을 가진 자는 인생의 반을 성공한 것이다.'고 했다. 새 이름이 새 세상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름이 빛난다고 끝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외출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더는 그 이름을 쓰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내 앞길을 막을 수 있는 흉명이라는 거였다. ‘빈’이라는 글자도 빛난다는 본래 의미보다는 ‘없다. 빈곤하다’는 부정하는 이미지가 더 강해 평생 가난하게 살 거라는 이유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억울했다. 이제 겨우 이름값을 할 채비를 마쳤는데 또다시 조용환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악몽이었다. 문득 김수안무거북이라두루미... 처럼 나도 ‘조정빈용환’으로 짓는 건 어떨까 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이름으로 살려면 나라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역시 무리수였다. 몇 칠을 울며 어떻게든 사수하려 발버둥 쳤지만 끝내 요단강을 건너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정빈’으로서 삶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현빈이나 원빈은 빛나는 이름이었지만 정빈은 그냥 빈티 나는 이름이었다.


다시 본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 잔인한 기억의 향수를 불러낸 건 아내였다. “아니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 이름처럼 좀 조용하게 살지 못해?” 조금만 참견해도 아내는 내 아픈 곳을 건드린다. 어찌 됐든 평생 이름에 치여서, 이름값 하며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이스트 반 자보감독의 영화 「메피스토」에서 연극배우인 주인공이 나치에 부역하다 쓸모없이 버려지며 하는 마지막 독백이 생각난다. ‘나보고 어쩌라고, 난 단지 배우일 뿐인데’

내가 그렇다. 나보고 어쩌란 건가. 내 이름이 단지 조용환일 뿐인데...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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