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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Aug 22. 2024

아버지가 날 찔렀다.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어.

이 병원 저 병원 순례를 마치고도 채 나아지지 않던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은 기어이 사단을 벌이고야 말았다. 퇴원 첫날,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던 아버지. 술을 더 가져오라며 온갖 가구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설명 못할 무언가가 음각되어 있었다. 


이를 어쩌면 좋아, 할 수 없이 나도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난동을 피우는 사람, 또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한데 뒤엉켜 레슬링 시합 한 판을 벌이다 기어코 깨진 도자기 파편으로 나의 등을 찌른 아버지. 사실 집안에 칼이란 칼은 모두 치운 연유도 그에 기인해서였다.


한때는 누구보다 강한 나의 슈퍼 히어로였지만 이제 남들 눈에는 그저 주정뱅이로 밖에 보이지 않을 나의 아버지. 쏟아지는 피의 양에 비례해 제정신을 차리신 듯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시엔 나 역시 너무나도 놀라서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알아서 멈추겠지' 하고 수면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잠자리에 들어 지금 분명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눈을 뜨면 모든 게 어제와 같을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더랬다.


일어나 보니 이게 웬걸. 

이불에 진 피떡이 그득그득하여 딱딱함을 느낄 정도였다. 다행히 피는 멎은 것 같았기에 대충 반창고를 붙이고 출근할 채비를 했다. 그 사이 온전한 정신의 아버지께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다. 미안하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본인도 어쩔 줄 몰라하시는데 내가 과연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내 가게로 출근을 하고 등과 허리가 욱신욱신거렸지만 상처부위가 보이지 않았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나의 일과를 소화해 냈다. (사실 이때 진즉에 병원에 갔었어야 했다). 사실 병원비가 아깝기도 한 상황이었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쬐는 뙤약볕에 상처가 곪아가는 줄도 모른 채.


통증이 배가되기 시작하자 그제야 병원 응급실을 찾은 나였다(사실 응급실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돈을 빌려 겨우겨우 갔더랬다). 간호사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깊이 파였으면, 안에 살점이 비칠 정도였다. 옛날에 자해로 따지자면 '한 따까리' 했던 나로서도 무서울 법한 광경이었다. 내장까지 다쳤을지도 모른다며 CT촬영을 권유받았다. 실은 병원비가 더 무서웠지만, 알겠노라고 대답하곤 약 3분 만에 촬영을 마쳤다. 다행히 내장에는 이상이 없었고, 파상풍 예방 주사와 상처를 꿰매고 응급실 문을 빠져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몇 되지도 않는 지인들은 하루빨리 아버지부터 신고하고 격리한 채 생활하라 말했다. 분명 이성적이고 맞는 말이다. 어떻게 한 집에 같이 살 수 있나.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하지만, 내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아버지를 품은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 무렵부터 가져온 죄책감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툭하면 자해를 했더랬다. 번번이 약물을 과다 복용했고, 위세척을 했으며 응급실을 이웃집 마냥 드나들었다. 투신을 해 왼쪽 몸이 으스러져 중환자 실에서 한 달이 넘도록 누워있었으며 30분이 채 되지 않는 면회시간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인근 여관방도 아닌 보호자 대기실에서 쪽잠을 주무시곤 화장실에서 몸을 씻으셔야 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이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기 시작한 순간도 그즈음이었다. 철없던 나의 비행과, 지속된 자해로 인한 정신병동 생활. 약물에 절어 혀가 마비된 모습을 보시고는 혀를 차며 한잔 두 잔 맥주를 드시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돌이킬 수 없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셨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실은 단지 나의 과거 때문만도 아니다. 나 역시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면 이 현실을 버틸 수 없다. 그래도 단 하나 있는 '가족'이 있었기에 어느새 제정신을 차리고 자해를 끊고, 약물들을 줄여가고 있다. 아버지는 나의 치기 어린 시절부터 쭈욱 같이 가시투성이 길을 걸어준 동반자였고 친구이자 방파제였다. 세상천지에 단 둘 뿐인 가족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비록 지금 아버지께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고, 나 역시도 그렇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 순간 아버지와 나, 모두 웃으며 옛날일을 회상할 수 있을 거라고. 약을 끊은 나와 알코올을 끊은 아버지. 비록 지금 현재는 문득문득 식은땀에 절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기도를 한다. 물론 종교는 없지만. 


 모두 지나가리라. 다시 돌아올 거야. 그 어느 때 보다 찬란했던 그날들도. 


 아직 욱신 거리는 상처를 더듬으며, 오늘도 스스로에게 응원을 한다.


 잘 될 거야. 모두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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