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최만선은 태어날 때부터 염색체의 돌연변이로 인해 앞을 볼 수 없었다. 만선이의 아버지 상욱은 의사와 면담 끝에 딸아이의 회복 불가능한 시력에 대해서만 의학적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 상욱은 집안에 있는 모든 가구들에 모서리 보호대를 부착했으며, 장애를 가진 아이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월 80만 원 납입의 적금을 들었다. 장래에 걸쳐 만선이에게 그 비싸다는 점자책을 사주기 위해서였다. 빠듯한 생활비에서 그만큼 목돈이 매달 빠져나갔으나 아내 명자의 걱정 어린 말들에 상욱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고작 돈 몇 푼이 문제여? 괜한 걱정 말어. 내가 다 알아봤으니께,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그리도 훌륭하게 컸는디. 시방 만선이야 고작 앞 못 보는 것뿐인데, 요즘 세상에 그건 장애도 아녀. 만선이 생긴 것 좀 보오. 지어미 똑 닮아 빼다 박은 것 같잖여. 어미 닮아 분명 똑똑허니께. 잘 극복할 것이여. 걱정하덜 말어. 요즘에는 맹인들이 죄다 마사지만 하는 세상이 아니여. 두고 보드라고. 만선이는 남들 맨키로 대학도 가고, 분명 훌륭한 그 머시냐... 그렇지 커리어우먼이 될거랑께.”
상욱과 명자는 그저 힘들게 태어난 늦둥이를 세상 어떠한 보물보다 소중히 키웠다. 하나 희망이라는 것은 때때로 꿈꾸는 이의 구원을 바라는 손길을 내치며, 정반대의 결과와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다른 이들의 자녀들이 하나둘씩 단순한 울음과 옹알이에서 발전해, 비로소 언어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엄마’, ‘아빠’ 등의 첫마디를 야물거리며 내뱉는 숭고한 장면들의 파노라마들 속에서도 만선이는 도통 첫마디를 띄지 못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늦으려니 하고 있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만선이의 입에서 나오는 음파들은 다른 아이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몇 번의 정신감정 끝에 만선이의 부모, 상욱과 명자는 그들의 딸이 심각한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IQ는 25, 두 살배기 아기의 지능에서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진비 2만 8천 원을 3분가량의 상담과 맞바꿨다. 얻은 결과는 딱히 이렇다 할 치료 방법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그날 이후로, 상욱은 몸을 생각해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 아내 명자는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연방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오징어 다리를 씹어가며 소주를 들이붓던 상욱은 한동안 못난 자신을 탓했다. 자학의 시간이 지나자 부정의 단계에 접어들 즈음에, 이제는 자신이 아닌 아내에게 모든 탓을 돌려버렸다.
“야이 샹년아. 네년이 내 몰래 다른 놈팡이랑 눈 맞아가 배꼽 맞춘 것 아녀? 얘기를 해보라고! 만선이가 진정 내 딸이었으면, 저렇게 될 리가 없당께! 암, 그렇고말고. 내 딸이었으면 말여! 분명 네년이 어디 가서 못난 놈 씨 받아온 것이여!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이 시벌년이 어디서 눈을 희번덕 거리는겨. 이 쳐 죽일 년, 에라이 이 화냥년아!”
상욱은 명자에게 빈 소주병을 던졌다. 술기운에 잔뜩 취해 던진 소주병은 애먼 창문을 깨뜨리고는 마치 현재 상욱의 정신세계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명자는 대꾸 없이 그저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는 오열했다.
상욱은 매일 같이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점차 피폐해지는 몸에 어렵게 구했던 용역업체 철거현장 십장 노릇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퇴직을 권고받았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낮에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딸아이를 위했던 적금도 채 만기가 되기 전에 해약하고는, 포장마차로 발길을 향해 질펀하게 취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매일이었다.
의사의 오진이었기를 누구보다 바라왔던 상욱의 마음과는 반대로, 딸아이의 멈춰있는 정신상태는 늘 제자리였다. 똥오줌 못 가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주위 사물에 대한 주의나 흥미도 없었으며, 모방과 유희의 욕구도 전연 찾아볼 수 없었고 단순히 씹는 일과 부수는 일 정도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초 감각기관은 정상인 데도 청각과 촉각의 분화 발달은 극히 미미하고 막연한 지각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강아지 마냥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모양이었다. 그러한 만선의 정신적 미성숙과는 별개로 육체의 발달은 어느덧 2차 성징의 증거를 보이고 있었다.
근 십 년간, 명자는 술에 찌든 남편을 대신해 빌딩 화장실 청소부 일을 했고, 상욱은 취한 상태를 줄곧 유지했거나, 침대 위로 쓰러져 잠들 뿐이었다. 양육하는 부모가 없다시피 한 만선이는 아무도 그녀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기에 엉덩이에 수많은 종기와 피부염이 생겼다.
봄이 가고, 여름의 태양볕에 얼굴이 거무죽죽 해지는 어느 날이었다. 웬일로 술을 마시지 않은 상욱은, 만선이를 집에 내 챙긴 채, 종묘사로 발길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독한 농약 좀 없소?”
“독한 농약이요? 선생님, 어떤 작물을 키우시는지요?”
농사생활을 해본 적 없던 상욱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 왜... 사과나무도 키우고, 고추도 키우고 그럽니다...”
가게 주인은 순간 경계의 눈빛을 띄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후... 선생님, 저희 가게에 선생님 같은 분이 오신 적이 달마다 몇 번 꼴로 오십니다. 저희는 농작물에 쓸 농약을 취급하지, 자살 기도하는 인간들을 위해 독약을 판매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청부살인 업자입니까? 어서 나가세요. 허튼 생각하지 마시고.”
“...”
상욱은 말없이 뒤돌아 선채 선반에 놓여 있는 농약 통을 몇 개 집어 들고는 어마 뜨거워라 냅다 달렸다. 메아리처럼 가게 주인의 욕설이 등 뒤로 흘러들어 왔으나, 상욱은 무심히 무단 행단으로 차도를 가로질러 갔다. 셔츠가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달리고 나서야 단골 국밥집에 도착했다. 늘 그랬듯 3천 원짜리 싸구려 국밥과 소주 몇 병을 주문했다. 품에서 꺼낸 농약병에는 ‘주의’라는 해골마크와 함께 ‘매치온’, ‘수프라사이드’라 적혀있었다.
얼큰히 취해 집으로 돌아오자, 일을 나갔던 명자가 어느새 집 거실에서 만선이의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만선이 내버려두고, 또 술을 자셨소?”
“맹자야. 내는 이제 지쳤다. 그냥 우리 모두 다 같이 편하게 떠나자.”
“그게 무슨 소리대요?”
명자는 상욱이 들고 온 농약병을 응시하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고... 왜 그러시오. 그리 못된 생각 하시지 마오...”
“아니다. 이젠 다 끝내고 싶다 내는.”
명자의 커다란 눈에서 또다시 수도꼭지가 터진 듯 연신 짠 물이 나왔다. 상욱은 그러한 명자의 오열을 뒤로한 채 만선이에게 다가갔다.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명자를 걷어차고는, 농약 뚜껑을 열어 만선이의 목을 뒤로 젖혔다. 냄새에 민감한 만선이는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상욱의 품에서 달아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씨벌! 들이 마시랑께! 만선아! 니 이래 살아봐야 뭔 의미가 있다고 이래 구는겨!”
눈물을 흘리며 상욱은 만선이의 뒷목을 잡다가 그만 농약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투명한 액체가 꼴꼴 거리며 마룻바닥을 적셔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구속에서 벗어난 만선이는 기분이 좋은 지 8 자 모양으로 스텝을 밟아가며 연신 박수를 쳐댔다. 마치 꽃에서 꿀을 발견한 일벌이 다른 동료들에게 춤을 추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 같았다. 그 모습을 시뻘게진 눈으로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상욱은 딸의 행동에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특별한 무언가를 보고야 말았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발작하던 폭주에서 다시금 제정신으로 돌아온 탓일까. 상욱은 만선의 등에서 한 쌍의 날개가 돋아나오는 환상을 보았다. 만선이는 웃는 얼굴로 날개를 펄럭거리며 아까와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종교라고는 관심 없던 상욱이었지만 상욱의 눈에는 그 모습이 13평짜리 빌라에 강림한 천사를 보는 듯했다.
상욱은 여전히 천사로 변한 딸의 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쓰러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술기운이 싹 가셨다. 쓰러졌던 명자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만선에게 다가가 통곡하며 그녀를 안았다.
“아이고. 불쌍한 내 딸. 만선아. 어찌하누...어째야쓸까...”
“...”
생에 있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상욱은 딸의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눈물방울이 뭉쳐 희뿌옇게 시야를 방해하는 와중에도 만선은 깔깔 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상욱은 딸을 꼭 끌어안은 명자에게 다가가 조용히 읊조렸다.
“여보...미안허이...나가 잘못 했구먼... 미안허이...”
몇 달 뒤, 가을이 가고 이윽고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폐부를 찌를 때. 상욱은 중고 트럭을 장만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파지와 고철들을 실어 날랐다.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삼만 원 남짓이었다. 허리디스크로 인해 종이 박스들을 옮길 때마다 몸이 시큰 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다음 노다지를 찾고는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욱은 생각했다.
‘또 어찌 보면 장님인 게 복이제. 이 더러운 세상 안 봐도 되니까네. 참말로 순수한 아이잉께. 그날 내가 본 것이 내 딸의 진짜 모습일지도 몰러. 하여간 천사여 천사. 우리 집에 천사가 살고 있는 것이여.’
상욱의 오른손엔 만선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가 든 시꺼먼 봉다리가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