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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Oct 08. 2024

나의 우울에게.

이제부터 넌 나의.

안에서 역류하듯 뜨거운 무언가. 가만히 있으면 쏟아져 나올까 물을 그토록 마셔봐도 이 불길은 도무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안타깝게도 내게는 이 감각을 다룰 능력이 없다. 글을 더 잘 썼더라면, 그림을 그렸다면, 목놓아 노래를 더 잘 불렀다면. 괴물 같기도, 때로는 천사 같기도 한 이 욕구를 마음 편히 내려놓을 텐데.     


나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했다.

  

어쩌면 미숙아로 태어날 때부터 나를 지배해 왔던, 지렁이처럼 꿈틀대던 이것이, 시대를 풍미한 어느 예술가들이 지닌 기질과 무척 닮았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나 이 '감각'은 주인을 잘못 만나 여태 '우울'이라 불려야만 했다.


사실, 나의 우울은 '낙차'에서 잉태된다. 이 감각은 아주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가 잔인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깊숙한 심해로 나를 처박아두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나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다 보여주면, 내 흉터가 노출되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누구도 나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지 못하리라 스스로를 세뇌하며, 벽을 치고 손목을 긋고 사람을 밀어내며 나의 '동굴' 속에 갇혀 허황된 자위를 탐닉했다.

  

그러나.


매일 일기를 씀으로써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물론 아직은 위태롭다. 여전히 위험하다. 그래도 간신히 마음을 가눌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를 삼키고 씹어대고 뱉어버리던 '우울'은 사실 '우울'이 아니었다.     

질주하는 야생마의 갈기를 힘겹게 붙잡고 있다.

푸드덕거리며 사방을 노려보는 눈빛.

              

오호라, 지금까지 나를 끌고 다니던 게 너였구나.      

이제부터 너를 길들이겠다.


네 위에서 떨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만. 

지금부터 나도 '우울'이란 이름 앞에 끌려다니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는, 너를 '우울'이라 부르지 않겠다

너는 나의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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