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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Apr 08. 2021

3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8만원이 남았습니다.

버팀목자금 받은 동네 카페지기의 잡설.

 그날은 참으로 요상한 하루였습니다. 실은 하루하루를 건너며 제 나름대로 스스로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며 살아왔다 생각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렇듯 글을 꾹꾹 눌러쓰는 이유는 채 여과되지 못한 위안과 회한, 또는 언뜻 엿보이는 희망 속에서 여전히 침잠하는 참담함. 딱 한마디로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제 안에서 똬리를 틀어서였나 봅니다.


 폐기되는 마스크의 장수가 늘어갈수록 깊어지는 한숨 조차 어느덧 심드렁해지고, 매일 울리는 휴대폰의 새로운 확진 경보조차 이렇다 할 감회가 없을 정도로 무감각해지는 제 모습. 굼뜬 동네 길 고양이의 낮잠과도 같은 나른한 매일을 지내는 동안 이제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다거나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투지조차 잃어버리지 않았나 회상해봅니다. 15평 남짓한 작달막한 공간에 갇힌 채 바라본 차창 밖은 어제나 오늘이나 지루하기 그지없지만 '오늘은 다르겠지'랴는 일말의 희망이 주는 감각의 마비는 그나마 하루를 견디는 '동력'이 되어줌과 동시에, 퇴근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술안주'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풋내기 카페지기인 제가 이 사태를 겪으며 많은 감정의 부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물감처럼 번져오는 우려와 그러함에도 붙들어 맨 희망을 놓지 않았고, 이후에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위정자들의 탁상행정과 미흡한 대처에 분노하기도 했으며, 이윽고 뉴스를 틀면 나오는 안전불감증에 걸린 '일부'를 '대중'으로 싸잡아 성토하며 홀로 술잔을 넘기는 못난 놈이었더랬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런 의식은 대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나'라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시는 손님과는 달리, 따박따박 예고하며 날아오는 고지서들은 쌓여가고, 산폐 되어 버리게 되는 원두의 무게와 비례하는 자괴감은 제 속을 텅, 비게 만들었습니다.


 '소상공인들만 국민이고, 힘드냐.'라는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 괜히 심통을 부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 야근을 밥 먹듯 해도 그리고 꼰대 상사가 있어도 월급쟁이 시절이 좋었지.'라는 철없는 생각을 갖기도 했었고, 매장이 불황을 겪는 이유를 제 안에서 찾기보다 애먼 곳에 돌려 쓸데없는 변명거리를 늘어놓고 항복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이 작은 공간에 쌓여가는 먼지는 늘어갔고, 금고의 시재는 줄어들었습니다.


 아,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반성문'이 되어가는 것 같군요. 그만큼 제 자신에게 많이 실망을 했었나 봅니다. 소위 말하는 '될놈될'을 생각지 않고 그저 이기적인 얕은 감상과 반성 없는 모습이 부끄러운 걸 알긴 하나 봐요. 


 어찌 됐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상공인 버팀목 자금'을 얼마 전 받았더랬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 또는 정권에 대한 지지 또는 힐난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아니, 다른 걸 다 차치하고서라도 입금 문자가 뜬 휴대폰 액정을 보았을 땐 그저 '아 숨통 좀 트이나 보다.'라는 안도가 드는 것은 저만이 느낀 감정은 아닐 거라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월세, 가겟세, 원두값, 우윳값, 주류값, 석 달 동안 밀린 전기세... 하나씩 계좌이체를 하다 보니 통장은 말 그대로 '텅장'이 돼버리고 말더군요. 그렇지만 여태껏 기다려주신 거래처 분들과 갓물주님께 너무나도 죄스러운 심정이었는데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띵하고 울리는 통장의 잔고는 8만 원이 남았더랬습니다. 제 머리도 띵~! 했지요. 순간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쯤에서 가게를 접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문열 아저씨처럼 들메끈을 고쳐 메고 다시 달려야 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더라고요. 생각해보자니 너무나도 막연하게 게획하고 아니, 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고 무턱대고 달려든 카페였던 데다 여유 없이 빡빡한 예산으로 이 코로나 사태를 견딜 수 있을 거란 다분히 '멍청한 자신감' 내지는 아집으로 인해 이 고생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고. 멋들어진 젊음의 도전 정신을 한참 빗겨나간 무모함이 저를 지배했다고.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아프고도 아프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달리기로, 아니 달리기 전에 우선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코로나 탓, 남의 탓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보다 열심히 살아가기로. 스스로를 다잡고 한 번 더 도전해보려 합니다. 아직 제게는 '8만 원' 어치의 희망이 남아있으니까요. 찾아오시는 한 분 한 분께 정성을 다해 제 마음을 표현한다면 언젠가는 분명 웃을 날이 올 거라고. 마스크에 가려진 웃음보다 생글생글한 눈빛으로 좀 더 다가가기로. 제 진심이 통한다면 훗날 8만 원의 몇 곱절에 상응하는 보람과 행복이 넘칠 거라고. 


 두둥! 이렇게 저의 모험을 이제 베이스캠프에서 다시금 시작하려 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모든 사장님들과 직원분들. 그리고 이 재난으로 인해 고통받고 계실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자고 해서 절로 힘이 난다는 것은 분명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내 일터고, 내 손길이 묻어난 오롯한 나의 공간인걸요. 저의 애정이 녹아있고, 추억이 낭자한 장소입니다. 그러니 파이팅해야겠죠?


 차임벨 소리에 마스크 없이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그 날이 오기까지, 묵묵히 제 자리에서 오늘도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봅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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