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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Apr 12. 2024

기쁠 때도 글이 써지면 참 좋겠네요.

그래, 오늘은 글자를 빚자. 내 손을 떠나가기 시작한 언어를. 자꾸만 멀어져 가는 낱말들을,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렇게 한 올 한 올. 

사실 저는 글자를 게워내는 편이에요. 외로움과 슬픔이 용량을 넘어서면 비명 대신 글자로 구토하곤 했죠.


"적당히 우울해야 글을 쓸 수 있어요."


갸우뚱하는 표정에 웃으며 대답하곤 했습니다.

     

"기쁠 때도 글이 써지면 참 좋겠네요."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조금 넉넉해져야 하는데, 어째 나는 전혀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늘 우울이 몸을 난도질하거나, 약 기운이 떨어지고 나면 쉽게 바닥까지 침전한 상태로 욕지거리를 잘근잘근 씹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평온해지곤 했죠.

  

아아, 당연하게도 나는 삶의 목표를 상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때 꾸었던 꿈도 제 손으로 깨뜨린 사람.

텅 빈 정신머리와 그저 꿈틀대는 젊음과 육신에 기생하는 한 조각 영혼일 뿐, 알약들이 없으면 홀로 넘기는 매일 밤이 고비인 시한부가 된 것 마냥 느껴졌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암흑이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옵니다. 언제부터 이토록 망가져버렸을까요. 입안의 살점이 씹히는 통증 속에서 해가 뜨길 기도하는 밤을 받아넘깁니다.

     

그러고 보니 술은 그 자식과 비슷한 색을 번져가게 해 주는군요. 암흑을 피하려면 나도 어둠이 되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만 아직 내게 빛이 남아있다는 사실마저 아프고 애처롭습니다.


몽롱한 자각 속에 넘치는 꽃 무더기 안고 잠들던 시간과 입을 맞춥니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합니다.


"깨지 말고 푹 잠들어."


"꿈에서 길을 잃어도 손잡아 줄게."   

  

시들어버린 꽃다발 위에서 잠이 깹니다.


핏기를 잃어버린 추억들. 

쌓여만 가는 잔해들.


"그런데 지금이, 몇 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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