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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삐 Apr 12. 2024

상어가 쏟아져내린 날.

아가미 없던 나의 청춘에게.

나는 전생에 분명 물고기였을 터이다. 느릿느릿, 흐리멍덩하게 유영하다 결국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미련한 물고기. 그 까닭이 아니라면 상어를 향한 나의 원초적 공포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톱니처럼 돋아난 이빨들과 살짝 벌어진 입. 심해가 번져오는 눈동자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체적인 공포가 오금을 적셨다. 실내에서 수영을 할 때에도 상어가 입을 벌린 채 쫓아오는 기분이었다.

   

그토록 상어를 무서워하면서도 실은 상어가 먹이나 사람을 물어뜯는 장면을 가장 즐겨보았으니, 이는 심각한 아이러니다.


사실 내가 체험하는 감각의 원형은 애정이라기보다 동경에 가깝다. 전생의 나를 꼬리부터 주둥이까지 단번에 삼켜버린 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외와 무기력함이 이번 생까지 번져온 듯하다. 때문에 상어를 본다는 것은 내게 숙명과도 같았다.


아쿠아리움에서 처음 상어를 본 순간, 본능은 지금 당장 도망치라며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내 앞의 '절대자'를 마주하면서도 도망치지 못했다. 상어는 그저 헤엄치고 있을 뿐이었다. '물고기'로 태어나지 않아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적어도 땅 위에는 상어가 없으니까. 수족관이나 저 멀리 태평양 깊은 곳 같은, 나와 상관없는 곳에 있을 테니까. 적어도 '직접 찾아가지 않는다면'. 상어 아가리에 반 토막이 나는 일은 없을 테다.

   

하지만 나는 지독하게도 육지인 곳에서조차 종종 '바다 냄새'를 맡았고, 해초처럼 미끈한 통증을 토해내기도 했다. '바다'는 내 안에 가득했다. 너무 짙고 어두워서 심해처럼 밝아지지 않는 깊이였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향한 절망'이었고, '호흡이 불가능한 청춘'이었다. 채 엄두가 나지 않아 무작정 탐험하지 못한 나의 청춘은 길었다. 


아가미가 생기면 조금 편해질까, 그날은 목덜미에 칼자국을 낸 밤이었다. 비좁은 틈을 비집고 바다가 흘러나와 방바닥과 거울과 책상을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상어들도 내 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상어'가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바닷물을 구토하던 목을 움켜쥐자 아가리가 대문짝만 한 상어가 내게 돌진해 왔다. 나는 그 시뻘건 이빨 속에서 그만 반 토막이 나버렸다.

 

몸서리치며 잠을 깼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는 '바닷물'이 아니라 '식은땀'이 넘실거렸다. 다행히도 강박증 환자의 책상 같이 말끔한 아침이다. 세수를 하러 거울 앞에 섰다. 

  

 목에 살짝 벌어진 상처 사이로 상어 꼬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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