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덧이 나, 또 잠을 설쳐야만 했습니다. 파리 한 마리가 앵앵거렸다만, 바지런히 내 손등을 더듬도록 내버려 두었죠. 내게 치열하게 달려드는 존재가 파리 말고 또 있었을까요. 있었다 해도, 나는 왜 잡지 못했을까요. 그토록 사랑해 준 사람을 잡지 못했더라면, 내가 잡아야만 하는 사람은 또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그러고 보니 헤어지고 나서 돌이켜 볼 새도 없이 그동안 찍은 사진을 한 번에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나중에 내 사진을 보려고 뒤적여봤지만, 죄다 당신을 만나기 전 사진들 뿐.
그대를 지우개로 지워내자 내 3년 역시 모조리 지워져 있었습니다.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무심코 집안을 정리하다가도 곳곳에서 당신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답니다.
특히 오늘 같은 기념일은 더더욱 그러하고요. 그 흔적을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릴 용기가 더는 생기지 않았기에, 마음속 언저리 한 곳에 차곡차곡 담아두었습니다.
이미 끊어져버린 인연을 다시 잇고 싶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남겨진 당신의 마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만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할 테지만.
이미 내 일부가 되어버린 그대를 보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립니다.
당신은 내 목 뒤에 새겨진 타투.
내가 평생 볼 수 없는 나의 문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