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남자는 여자가 무용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혼자'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를 무작정 따라가고 그렇게 그녀의 집을 알게 된다. 그녀의 방까지 몰래 들어가서는 그녀가 사용했던 머리삔을 몰래 들고 나온다. 그러다 샤워하고 욕실에서 나오던 여자와 마주쳐 여자는 화들짝 놀란다. 남자는 서둘러 도망간다. 여기에서 일단 1차 빡침이 온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고 한들, 자신은 나름대로의 사랑을 열렬히 하고있다 한들, 그녀의 방에 허락도 없이 몰래 들어가다니, 이건 개놈이 아닌가. 만약 내가 샤워하고 내 방으로 가려다가 내 방에서 나오는 남자를 마주친다면? 정말 끔찍하고 무섭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여자는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다. 여자의 아버지는 최고의 전속 간호사를 병원측에 요구하고 병원에서는 정말 잘하는 간호사라며 이 남자를 추천한다. 어머니 병간호를 20년간 했던 남자는 최고의 간호사임엔 틀림없다. 섬세한 배려로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식물인간이 된 여자를 깨끗이 씻기고 생리하면 타월을 대주고 손톱까지 다듬어주고 맛사지까지 잊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가 혹시라도 깨어났을 때 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면 안된다며, 헤어스타일도 처음 사고났을 당시로 유지해주고자 정기적으로 머리카락도 잘라준다. 여자의 아버지는 간호사가 '남자'라는 것에 좀 찝찝하지만 이 '남자'간호사가 자신은 '남자'를 좋아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받아들인다. 물론, 남자의 거짓말 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간호하는 그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자신의 친구에게 '그녀와 결혼할거야' 라고 해서 친구를 경악케 만드는데, '우린 정말 잘 맞아' 라는 말에 나는 '아, 이 남자는 답이 없구나' 했다. 도대체 어떻게 잘 맞는다는 것인가. 게다가 결혼이라니. 그녀의 의사는 손톱만큼도 반영이 안된 결혼이라니. 그들 사이에 결혼하고자 하는 대화가 오고갈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이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는데, 하아,
여자가 임신을 했다.
병원측에서 이상을 느껴 검사를 했을 땐 벌써 임신2개월 째였다. 여자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 무성영화와 무용 공연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는 이에 자신이 시간 날 때마다 무용 공연을 보고 또 무성 영화를 보고와서는 여자를 간호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해줬다. 이야기해주던 어느날 밤, 그는 그녀를 임신 시킨 것이다. 식물인간인 여자가 임신을 했단 말을 들었을 때의 그 끔찍함이란!
강간이다.
백번 양보해서 여자가 설사 의식이 있어 남자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고 그래서 여자도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한들, 이 임신에 여자의 의사는 없었다. 여자도 같이 자자고 말한 게 아니다. 남자는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자신의 감정만으로, 자신의 일.방.적. 사랑으로(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녀를 임신하게 했다.
결국 남자의 강간이 드러나 남자는 감옥에 갔고 여자는 아이를 사산한 채 의식을 찾는다. 자신의 아이를 사산했다는 소식은 알지만 여자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을 모르는 남자는, 여자가 없는 세상은 의미 없다며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 무덤에 찾아간 남자의 친구는 그에게 꽃다발을 주며 '네가 그녀를 깨어나게 했어' 라고 한다. 하아- 이게 무슨 말이야, 지금..... 이게 말이야, 소야... 미쳤어?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적 동의를 고민할 때 신체적 자율권 개념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섹스와 섹스를 둘러싼 모든 결정 과정이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성관계가 어느 한쪽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연한 만남에서든 오래된 관계에서든 성관계는 ‘상호‘ 교류를 의미한다.- 《성적 동의》, 밀레나 포포바 지음, P55
상대의 동의가 일절 없이 한 성관계는 성관계가 아니라 강간이다. 침범이다. 타인의 몸에 대한 침범을 사랑이라고 덮어 씌우지 마라. 그건 강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