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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Jan 05. 2024

이걸 못찍으면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게 분명하다

영화 <거미집>을 보고

종종 웃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마지막 롱테이크의 집중도는 대단했다. 용어를 프랑스어로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레 인물들이 롱테이크, 그러니까 플랑세캉스라는 용어를 자주 언급해 해당 장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게끔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한 물 간 영화감독의 고집이겠거니 생각했다. 그걸 지지하는 미도도 예술병이 걸린 유학생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결말을 수정하여 만든 영화는 대단했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난 다음, 감독용 낚시 의자에 앉아 촬영장을 바라보던 김감독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하다. 고전 영화들의 특징을 스토리 전개에 살리고자 했는지 개연성이 굉장히 명확했고, 인물마다의 존재 이유가 명확히 있었다. 맥거핀이었던 탐정역의 배우도 재미를 더했다.


영화의 구조는 어떠했을까? 최근 <내러티브 앤 넘버스>라는 책을 읽으며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플롯을 따라가보며, 스토리 구조를 이해해보자. 어떤 부분에서 내가 몰입을 하게 되었는지, 스토리의 각 요소는 극을 이끌어가기 위해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발단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의 한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흑백 영화로 촬영이 이루어졌고, 번개가 칠 때마다 섬뜩한 민자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김감독의 꿈이었다. 영감이 번뜩한 김감독은 새로운 결말로 영화를 다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작사를 찾아간다.


전개

김감독은 한물간 영화감독으로 그려진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도 주변인들의 조롱을 받기도 하고, 제작사에서도 재촬영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이때 명확히 드러나는 문제는 시대적 배경에 따른 영상물 심의 문제이다. 제작사 대표는 “미도”라는 인물과 상의를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김감독은 미도를 찾아가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다행히 시나리오에 설득된 미도는 극에 추진력을 더해준다. 일단은 자신이 책임질테니, 김감독이 재촬영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촬영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듯 했지만 심의위원회에서 나온 김주사라는 인물이 촬영장을 찾는다. 촬영장을 봉쇄한 설정은 배우가 촬영장을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외부 사람의 등장 시 문을 두드리게 함으로써 극의 전환을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미도가 김주사와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함으로써 문제는 일시적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이는 김주사가 최국장과 연락이 닿지 않게 됨으로써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고, 마지막 화재 장면에서 극의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유림이 컨디션과 스케쥴을 이유로 촬영에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미도가 그녀를 대신해 우스꽝스럽게 나서기도 한다. 최국장이 옴으로써 촬영장에는 잠시 긴장이 흐르지만, 조감독의 기지로 촬영은 재개된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최국장 덕분에 출세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림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준다.


절정

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고 몰입했던 파트였다. 바로 “플랑세캉스”장면. 화염 속에서도 촬영은 계속 된다. 계획된 화재 장면의 촬영이었기에, 안전상의 위험은 이미 고려되어 큰 문제는 발생할 리가 없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일시적으로 해결되었던 김주사와 사냥꾼이 촬영장 2층에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 장치가 촬영 장면의 긴박감을 더하고, 김감독의 집념을 보여준다. 꽃피우지 못한 재능에 대한 마지막 절규일 수도 있고, 영화에 대한 불같은 사랑일 수도 있고, 선배 감독을 따라가고자 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결말

다행히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된다. 영화의 메인 주제였던 “바뀐 결말”이 상영된다. 영화가 모두 상영되고 크레딧이 나올 때, 실제 배우의 이름이 나와 영화가 끝나는구나 했지만, 시사회 현장으로 장면이 이어진다. 다음으로 나오는 정말 마지막. 신감독의 죽음 당시 백회장과 김열 감독 각자가 그의 재산과 영감을 훔치는 장면이 교차한다. 김감독은 새로운 결말에 대해 “욕망에 취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신감독의 시나리오를 훔쳐서 데뷔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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