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해도숨겨지지않는것
#차별을찬성할자유따윈없어
어느 날 넷플릭스로 볼 만한 게 없을까 하며 골라보던 중이었다. 넷플릭스에 새 한국 드라마가 뜨면 요즘 한국에선 뭐가 유행인가 하며 훑어보는 편이었다. 본래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나의 TV이자 방송국이었다. 몇 편의 소개를 넘겨봐도, 다 지루했고 보고 싶은 게 없었다.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가 다 똑같지. 일률적인 XX’와 XY 1:1의, 그것도 20-30대에 한정된 사랑 이야기들 뿐. 내가 나이가 들어서 몰입이 안 되나. 센 자극이 아니면 마음이 안 동하는 건가? 이곳에서 너무나 다양한 사랑을 보아버린 탓은 아닐까.
대만은 아시아 최초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이다. 대만에 한번 와본 LGBTQ[1] 사람들이라면 그 자유로운 분위기를 잊지 못하고 매해 프라이드 때 연례행사처럼 방문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예 여기서 애인을 만나 눌러앉는 경우도 많이 봤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타이베이 프라이드 시기가 되면 타이베이의 그 많은 호텔이 만실이 되었다고 들었다. 한 해는 외국에서 친구가 타이베이 프라이드 기간에 맞추어 놀러 와, 같이 게이 바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몇 년 간 타이베이에 와서 고개가 돌아갈 만큼 잘생긴 남자를 만난 경우가 진지하게 말해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2] 미남 훈남의 씨가 마른 듯한, 마른 줄만 알았던 타이베이, 그런데 그날 게이 바에 가보니, 타이베이 쭉쭉빡빡(키! 근육!) 미남은 다 거기 모여 있었다. 순간 찾아오는 헤테로의 비애. 어차피 나는 출전도 못하는 경기인데, 세상을 다 빼앗긴 듯한 이 분함. 그러나 이런 미남과 근육남들을 아무런 이성적 긴장감 없이 보고 즐긴다는 건 또 다른 해방이었다. 그날 밤 바텐더들은 쉴 새 없이 내게 무료 칵테일을 보내왔고(대체 왜???), 내 손을 끌어다 자신의 벗은 몸을 쓸게 해주는 고마운 근육들도 많았다(그니까 왜???). 아놔, 이제껏 어디 바에 가서 이만한 환대를 받아본 적이 있던가. 끝내주게 즐거운 가을밤이었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와 젠더 프렌들리의 도시 타이베이는 태국하고는 또 다르게 전 세계 소수자들의 아시아 허브가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거리에서 남남, 여여 커플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고, 각종 LGBTQ 행사나 심포지엄도 헤테로들도 원하면 얼마든지 참석하고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서른 중반까지 살면서, 나는 홍석천 말고 커밍아웃한 사람을 못 봤다. 그러니까 내게 실제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은 없었고, 소수자를 티브이나 영화에서만 봤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살면서 그토록 그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접점이 없었나? 아니면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너무 음지에 있나? 어쩌면 내가 무심한 탓에 그들을 보지 못했나.
대학원 첫 학기에 들었던 문화수업에서 기말 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그 수업에는 현지 학생 절반, 국제 학생 절반 정도가 같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현지 학생들에 비해 국제 학생들은 매번 발표도 그렇고 기말 논문은 특히나 버거웠다. 매주 수업 자료 읽어가기도 버거운 첫 학기였다. 교수가, 기말 논문을 그룹으로 완성해도 된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국제 학생들끼리 눈빛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바삐 오갔다. 그중 항상 검은색 상하의 복장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활 쏘는 멋진 남자 올랜도 블룸처럼 금발 머리를 뒤로 반 묶음을 하고 다니는 북유럽 친구 J가 있었다. 나는 J가 제안한 젠더 이슈 관련한 주제가 마음에 들었고, 중국 친구 하나가 더 합류해 세 명이서 기말 논문을 같이 쓰기로 했다.
나중에 합류한 그 중국 친구가 도중에 똥을 싸지르고 자기네 나라로 토끼는 바람에 막판에 이 J와 나는 둘이 밤새워가며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데면데면하던 사이에서 가까운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그때 같이 쓴 논문은, 내가 대학원에서 낸 아웃풋 중,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하는 최애 논문이 되었다.
그 학기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연락을 이어갔고 J는 자기가 관심 있는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대개 젠더 문제나 소수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루는 ‘드랙퀸’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드랙퀸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가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이런 데는 누가 안 데려가 주면 헤테로 혼자서 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신기하고 새로운 건 무조건 직접 맛보고 뜯고 해봐야 한다. 그날 밤 10여 명의 드랙퀸이 무대 위에 올랐다.
쇼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쇼에서 하듯 자기 스타일의 착장을 선보였다. 자신이 자라온 성장 배경, 드랙퀸을 하게 된 계기 등 저마다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었다. 백인, 흑인, 유럽, 미주, 아시아, 원주민 등 다양한 변장의 황후들이 총출동했다. 드랙퀸이 9, 드랙 킹이 1명이었다. 그럼에도 <헤드윅> 같은 영화나 유튜브에서 자주 접해본 덕인지 과장된 메이크업과 착장에도 트랙 퀸은 오히려 친숙한 느낌이었는데, 여성이 남장 변장을 한 ‘드랙 킹’의 경우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어차피 드랙퀸 드랙 킹의 목표가 자연스러움이나 목표 성별에 얼마나 가깝게 표현되었느냐는 아닐 것이다.
그날의 백미는, 지각을 해서 맨 마지막에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블랙 퀸이었다. 얼굴의 3배는 넘을 만큼 풍성한 아프로 헤어 가발에, 이목구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까만 피부, 팔뚝 끝까지 올려 낀 은빛 긴 실크 장갑, 몸에 달라붙는 스커트와 소매 없는 터틀넥. 그의 몸에서 빛이 광채가 나는 듯했다. 눈을 뗄 수가 없이 아름다웠고 진실로 나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나는 실로 백인보다는 흑인의 외모에 더 매력을 느끼는 쪽이다. 하지만 이 블랙퀸의 매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까만 그녀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동굴보다 더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좌중을 휩쓸었다. 전율이 일고 뒷덜미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의 외모와 너무나도 분명한 남성의 목소리의 공존. 눈을 뜨고도 믿기 힘든 황홀한 공감각적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소수자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가보았고, 주변에 그 커뮤니티의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생기고 나니 그들과 그 문화가 더 알고 싶어 졌고 알아야 했다. 관련 영화를 찾아봤고 드라마, 소설을 읽었다. 눈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그들이 내 의식과 생활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종 대만의 이 자유로운 젠더 프렌들리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한다. 주로 호모포비아를 가진 남자들의 목소리가 드높았고,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고 살아온 이들이 동성애자나 소수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일별할 수 있었다. 하루는 새로 부임한 교수에 대한 평이 유학생들 채팅 창에 올라왔다. 인간적으로든 교수자로써든 초임이어서 그런지 학생들로부터 뒷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교수였다. 그 교수가 토론 수업 주제로 ‘동성연애와 사회’에 관한 읽기 자료를 준 모양이었다.
“그 교수 동성애자 아니죠?”
“제발 아녔으면.”
“가능성 농후한 듯.”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다, 논쟁을 할 생각은 없지만 입을 가만히 닫고 있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이 한국 학생들이 토론 수업에 가서 동성애는 죄라거나, 성경이나 하나님이라도 들먹거리며 반대한다는 둥의 어처구니없는 의견을 낼까 봐, 무지와 미개함을 여과 없이 드러낼까 봐, 그래서 수업 듣는 로컬 및 다른 국제 학생들을 경악시킬까 걱정돼 한 마디 얹었다.
“동성애자든 아니든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하는 발언은 조심해야죠.”
내 말 바로 밑에, 한 신입생이 응수했다. “동성애 반대를 표현할 자유도 있죠.” 도저히 함락되서는 안 될 성을 지키는 십자군처럼. 한국 20대들의 차별에 대한 이중잣대를 이야기한 사회학자 오찬호의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떠올랐다. 동성애가 타인이 반대하고 찬성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탈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대체 이 세상 어디에, 차별을 찬성할 자유가 있단 말인가. 나는 방 안에 혼자 있길 좋아하는 그 신입생이 대만에 있는 동안 자기 방문을 나와 세상을 좀 더 보고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했다. 그가 보고 겪을 일이 아직 많다.
[1]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너questioner를 일괄 이르는 말.
[2] 대만 남자들이 다 못 생겼단 소릴 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몇 마디 붙이고 싶다. 일단 키와 몸무게 면에서 대만은 한국보다 남녀 구분 없이 편차가 굉장히 크다는 인상이다. 한국은 외모를 모두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고 어떤 암묵적인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꾸밈에 대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에게도 요구하고 압박한다. 하지만 대만은 훨씬 자유롭다.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만 자기 느낌대로 갖춰 입는다. 내가 대만 남자들에게서 느끼는 인상은, 자상하고 ‘청순’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