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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Mar 18. 2021

고통의 총량을 20대 거의 다 썼다

세상은 부메랑

엄마의 요구로 동생의 피아노 학원비를 월급의 반을 내면서 쓰고 싶은 돈도 못쓰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어리석게 난 삐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의 부모의 갈등은 급기야는 가족을 상대로 아빠의 잦은 폭행으로 이어지면서 엄마의 제안으로 22살 언니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은 한 명씩 집을 나가기로 했고 나온 집은 달동네에서 시작을 하였다. 알바를 하면서 2년간의 대학을 쫓기듯 나오고 취직한 회사에서 아빠가 해야 하는 가장 노릇을 본의 아니게 반가장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겁나기보다는 지쳐서 동생의 피아노 교육을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는 엄마의 답은 언제나 냉정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대 전문대 학력으로 사회인으로 세상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을 알았을 텐데 엄마의 동생에 대한 교육열은 내가 받을 박탈감보다 훨씬 더 강하고 확고하여 당신의 고집을 고수하여 나의 희생을 책임감으로 둔갑시키려 애를 썼었다. 가정에서는 본의 아니게 반가장으로 살아가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동생의 학원비 때문에 성희롱하는 상사와 일하는 회사에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그때를 견뎌나가고 있었다.


만약 열심히 살아가면서 분수에 맞는 교육으로 공의롭게 엄마가 동생을 도와주게 하였다면 난 기꺼이 보람을 느끼고 지금까지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막내의 예중 예고와 음대와 유학까지 보내고 싶은 엄마의 욕심은 다른 가족들이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박탈감과 괴리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던 엄마는 모든 자녀들이 받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의 주체인데도 그 관계성에는 언제나 한발 물러나 있던 것이 그때는 잘 몰랐기에 한쪽 부모인 현실을 살아가려고 엄마의 말만 듣고 살았었다. 나의 엄마는 그렇게 당신의 하지 못한 공부의 한을 동생을 통해 풀기라도 하듯 다른 자녀의 상처를 억지로라도 덮고 언제나 엄중함과 화를 번갈아 가면서 한 부모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다.


곁에서 살고 있는 새아버지는 그런 막내가 대학을 떨어지니 아쉬운지 재수를 시키고 서울의 대학을 한 번 더 떨어지고야 지방대라도 보낼 요량으로 부산의 사립대에 보내고 졸업할 때까지 도와주고 유학까지 보내면서 의기양양해하며 그들만의 만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언니는 엄마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해야 한다며 나의 독립을 권하였고 본인은 엄마의 혹이라 여겨 빨리 결혼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여긴다며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난 너무나 이상했다. 이 모든 것이.

한 여자가 남편을 잘못 만나 새로운 행복을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엄마의 선택이다.

자녀들이 받을 상처들을 방치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는지를 모르니 살면서 난 엄마의 모든 선택들 때문에 그저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난 나의 친아빠가 정신질환으로 가장으로서나 아버지로서나 무능력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엄마를 언제나 불쌍하게만 생각했었다가 엄마의 미시적인 조악함을 보고 혼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것이 당신의 모든 자존심을 빼앗겨 버린다는 두려움이 있는 모양인지 아님 전남편의 증오심으로 칼날을 세우며 언제나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계셨다.

항상 자식을 낳아봐라. 네가 자식이 없어서 그래.라는 변명과 핑계뿐이었다.

가치관의 차이의 골은 깊기만 하였다.


우리 집의 손주는 단 한 명 언니의 자식이다.

언니는 엄마의 가르침이 한이 맺혔는지 조카를 채찍질과 당근으로 야무지게도 키웠다.

부모와의 대화가 없었던 관계가 싫어 상대적으로 조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조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고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부부싸움이라도 나면 최대한 밖에서 싸우는데 어쩌다 들켜서 주눅 들어 있는 딸한테 얼른 가서 달래주고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릴 적 책을 읽는 습관을 몸에 베이게 만들어 커서도 게임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교육을 시켰다. 당연히 성교육도 포함해서다. 아이의 정신이 자기를 닮아 아주 예민할 수 있음을 알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걸 쉽게 느끼게 하기 위해 언제나 클래식 음악회나 미술관을 데려가서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키우고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주려 애를 썼다.




20대 초 K라는 남자는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어리숙한 난 그것이 사랑일 거라고 믿고 그 남자와의 사랑을 하고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나보다 2살 위인 K는 한 여자에 대한 처참한 상처는 아랑곳없이 그의 죄와 그와 더불어 죄를 지은 난 덮어질 줄 알고 살면서 마지막의 그의 가증스러움을 보고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1996년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보다 껌 팔러 왔던 K의 허세와 작업에 썸을 느끼고 몇 달 뒤 연락이 오면서 교제가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장기 연애로 힘들어하고 있던 나에게 훅 들어와 가까이 있어 자주 볼 수 있다는 안정감이 이성교제를 많이 못해본 난 겉과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연애초보 순진한 여자였다

어릴 적 그 나이에 난 사랑을 갈망하고 인간의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터라 그 사람을 많이도 좋아했던 것 같았다. 나쁜 남자였는데 20대 난 그런 면을 속으로는 뭔지도 모르고 동경했는지 모른다.


만나서 생각보다 속도를 내려했던 K는 날 강제로 빨리도 쟁취를 하였다. 그러고는 술을 마실 때면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K의 말을 듣고 헤어져야겠다 마음먹고 살다 보면 잊을만하면 연락이 오곤 하였다.

어리숙하고 순진한 난 K의 뱀과 같은 거짓말과 유혹으로 관계를 5년간 지속하였었다. 친한 친구는 헤어져라고 했지만 무엇이 나를 거기까지 가게 만들었는지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간 날 미워하고 자책으로 많은 시간을 괴로워하였다. 쓰레기 같은 그의 욕구는 결국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우린 결정해야 할 때에 맞닥드리게 되었다.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만난 자리에서 계획하지도 원하지 않은 임신이 되었고 K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얼마 뒤 자기가 잊지 못하는 첫사랑과 결혼한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떠나갔다.

버림받은 것이 너무 절망스러워 어떻게 살았는지도 살아있는 시체가 이런 거구나  정도였던  같았다. K 문자로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나에게 씻을  없는 상처를 남기고 그만의 결혼 생활을 했다.

내가 남긴 상처는 나의 엄마의 가슴에 못으로 박히고 안 그래도 어그러져 있던 우리의 관계는 경로를 완전히 일탈했던 것이다.

엄마는 새아버지와 합친 지 얼마 안 되었고 나의 망가진 몸을 위로보다는 차가운 외면으로 내치면서 회사를 쉬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무시하면서 날카로운 대화 도중 설거지 하다만 물을 얼굴에 뿌리기까지 하였다.


그때의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남자의 배신보다 엄마의 차가운 행동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쓰레기 같은 남자는 깨끗하게 잊어주면 되는 거니깐.

엄마의 신혼집이 더럽혀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행동 같아서 구정물을 덮어쓰고 방에 돌아와 세상의 쓴맛이 이런 걸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식이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좀 쉬고 싶다고 음침하게 보는 상사들 때문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나의 얼굴에 나와 엄마가 둘이 있는 어느 날 당신의 바닥을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나의 중절 수술은 모든 가족에게 함구케 하고 난 엄마의 외면을 쓸쓸하게 받고 혼자 견뎌내고 있었다. 처음 간 병원에서 수술을 잘 못해서 계속되는 하혈에 이상하다 여겨 다시 병원을 찾은 날 의사는 큰일날뻔했다는 말만 하고 전신마취와 함께 한번의 수술을 더 했다. 동생 학원비로 월급의 반을 쓰고 있어서 돈이 없으니 카드를 썼는데 나중에 불어난 카드빚을 못 갚자 엄마의 다그침과 잦은 화를 난 나의 망가진 몸과 함께 다 감당해야만 했다.


힘들어 찾아간 나에게 아빠는 엄마의 행동을 듣고

큰 딸에게 연락해서 둘째인 나를 위로해줘야 함을 일러주기 위해

”진이한테 연락해서 아빠 바꿔줘라”

그러고는 아빠가 위로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내가 아는 어른들은 자식들이 받는 상처에 자신들의 그릇을 깨뜨리기를 원하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면서 아빠는 엄마에 대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선아,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나중에 나이 들면 너도 엄마에 대해 알 꺼야."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난 나이가 들어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잊어버렸다.

돈이 너무 없고 힘들어 찾아간 난 아빠에게도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아빠집을 나오다가 큰길가에서 길을 건너다 저만치 오는 오토바이를 못보고 치여 난 차길 중간에 낸 몸이 날라서 꼬꾸라져 있었다. 얼마뒤 오토바이 주인은 병원을 가야한다며 나를 끌고 가려하지만 남자가 무서웠던 난 정신을 차리자마자 괜찮타며 뿌리치고 집으로 뚜벅뚜벅 왔다.


엄마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언니는 엄마의 새 인생을 위해 독립을 권했고 집 보증금이 없으니 새로 구한 서울에 새 직장 자리를 보여주며 아빠는 돈을 주지 않으니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난 그렇게 당신들을 피해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삶에서 나의 내적 갈등이 홀연히 사라질 때쯤 K의 상황을 묻는 나에게 친구의 답장이 왔다.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나빠야 된다고 분노를 했던 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 사람 이혼했고 지 첫사랑이라고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와이프에게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고 했다. 부부의 아이까지 있는 그 여자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을 요구하면서 아이는 줄 테니 가게 차릴 돈 30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애가 무슨 잘못이냐며 아이가 너무 어려 아빠 혼자 못 키우니 K의 누나가 키운다고 했다. K는 자기 아이 값으로 팔아서 바람피운 남자와 새 살림을 차리려는 여자와의 결혼 생활은 위자료와 함께 끝났다고 했다.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오랜만에 연락한 내가 있는 서울에 한걸음에 왔다.

양다리를 걸치다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한 여자를 버리고 3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세상의 부메랑이 이런 거구나 인과응보의 세상의 순리를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난 그의 얼굴의 처량함까지 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마음의 화병을 끝낼 수 있으니.


"내가 널 버려서 벌 받았다.

  나의 인생에 두 명의 여자가 있다."

교제할때 입버릇처럼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보라던 그가 입을 떼었다. 그다음 말을 하려는 가증스러운 K의 말에 난 당당하게 나를 보여줬다.

"인과응보예요.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기도로 잃어버린 생명을 가여워하세요. 그리고 당신과 같은 사람과 만나세요."


고통의 종류 중에는 스스로 죄를 지어 만든 것이 있다. 그건 죄책감을 동반하는 것이라 양심이 살아있는 자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고통은 심연을 동반한 또 다른 죄다.


고통의 총량이라는 말이 있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사람한테 준다는 뜻인데 난 직감할 수 있었다. 난 20대 때 고통의 총량의 반 이상을 썼다. 가족에게서의 부모에게서 받는 상처는 남자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수십 배는 되었다. 죄로 인한 심연을 경험하는 처절함을 겪어봐야 알게되는 나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위로하기 보다는 나를 자책하면서 살아가야 함으로 날 죽이고 살리는 선과 악을 존재케 하는 대상을 찾아 끝없는 터널속 탈출구를 만나기를 희망했다.


나의 아빠는 그렇게 고독을 선택해서 세상과 가족을 원망하면서 힘들어하는 자녀나 가족들을 외면하면서 당신의 정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고

나의 엄마는 당신의 열등감으로 소유물이라 여기는 자식을 상대로 자신의 욕심만을 채워나가는 당신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모른 채 두 분 다 어그러지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행복과 불행의 희로애락의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난 보이지 않는 세상 속 관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조악한 영과 가장 선함의 전운의 고조됨에 언제나 그랬듯 선함으로 고취시켰다.


‘세상은 그렇고 그럴 수도 있어’라고 누군가는 뜻 모르는 동정으로 불쌍하다 여길수 있지만 가여워 할 수 있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어야 한다고


세상을 만든 보이지 않는 실상은 실체가 되기 전 끊임없는 전쟁을 하지만 짙은 농도의 선은 악을 이긴다고 믿는다.

농도가 진하고

심연보다 깊고

우주보다 넓은 선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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