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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Nov 08. 2022

정체성 찾기

작가로서 살아남기

2021년 40대의 한국의 삶은 독일과 아주 다른 큰 위안과 편안함이 나의 삶을 보호해주고 환경적 압박감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환경이 달라진 한국에서 관조적인 시선에서 다소 다르게 현실적인 분위기와 나의 계획함에 일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교육적인 비전을 생각을 안 해본 나로서는 귀중하고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아동과 성인 미술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을 하였다. 아이들의 순수한 창의력을 보고 관찰하면서 작업을 하면서 작가의 삶을 계속 유지시키를 항상 바라고 있었다. 2020년 12월 나에게 해당되는 전시 원서를 지원하면서 잦은 거절에 마음을 비우기를 반복하면서 또 다른 고비를 넘어야 함을 받아들이고 욕구보다는 현실적인 경제활동과 병행하면서 마음 비우기를 거듭 연습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2020년 초 귀국하면서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독일에서 가져오지를 못하기도 했었고 2018년부터 가족의 우환과 의지박약으로 작업 의지를 상실하면서 그저 한국에서의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미술을 하면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진다는 말들을 실감이 되면서 난 한국에서는 직업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나도 도전해보기로 했었다.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독일에서와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사그라드는 나 자신에게 올곧이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픈 나의 깊은 마음은 가족들에게도 숨길수밖에 없었다. 또래 40대 중반들이 일궈놓은 환경에 비해 난 초라하다는 생각이 한국에서 맞게 될 줄은 몰랐다.

나에게는 한국의 미술시장의 환경과 방법들을 많이 몰랐기 때문에 작가들이 많이 보는 사이트만 보면서 지원 일정이 업로드되면 가장 마지막 날짜와 마감시간에 지원했다. 나의 바람을 이해해주는 가족들은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작가노트와 원서 지원을 하던 중 기적적으로 부산교육청 소속 어느 갤러리에서 주최하는 기획전에 지원한 원서가 되면서 2년 만에 다시 작가의 삶을 그리면서 나의 마음을 위안했었다. 그룹 전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그리 작지는 않았다. 2021년 12월로 희망하는 전시일정에 일 년의 기간 동안 일하면서 작업을 준비하리라 마음먹었다.

모든 작가들이 공감되는 거지만 작가에게 영감은 중요해서 전시가 계획되어있지만 영감과 콘셉트가 사전에 되어있지 않으면 부담감이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의 나의 작품 구상에 몰입과 집중을 기대했지만 설치미술을 하지 않고 회화로 다시 시작하려는 계획은 그리 녹녹지 않았다. 작품 구상이 빨리 오지를 않고 그저 나의 경제적인 활동만 집중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전시이기도 했지만 졸업  나의 한국에서의  회화작품이라 설레기도 했었고 많이 긴장도 했었다. 예전 독일에서의 회화 작품을 생각하면서 작품 구상을 했지만 구상의 마무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일을 하면서 작품의 주제를 먼저 정하자는 마음에 가장 쉽게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를 적기 시작하였고 무엇보다 나의 내면적 필연성에 귀를 기울였다. 작품 구상을 위해 내면적, 외면적 필연성의 구심점을 언제나 먼저 찾아야만 하는 것은 나의 작품의 최대의 숙제이다. 문화적 코드를 근본적으로 재코드화하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것은 표면 아래를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것이다. 근본적인 촉매제 즉, 뿌리가 튼튼해지려면 여러 환경과 노력으로 수많은 가지와 열매를 이룰수 있다.


#환경 #아버지의 부재

이 두 가지의 개념의 개연성과 철학이 없으면 작품은 그저 나만의 애장품으로 그쳐버린다는 생각에 일단 내면적 필연성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 작가로서의 삶을 기대하면서 온 정신과 이성을 극대화하면서 작품 구상에 전투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첫 번째 신호인 확신과 만족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0월 초… 시간이 없어….

일을 하면서 두 달 만에 작품 5점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무조건적인 단순노동 작업이라 시간싸움이다. 그때부터 밤 시간을 고스란히 작업시간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4시간 잘 때도 있었고 밤을 새웠던 적도 있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아우라의 붕괴_쓰레기의 권위(사진은 작업 과정 중)

구상이 늦게 와서 아쉽지만 그래도 너무 고마웠다. 나의 2021 작품이다. 나의 정체성을 다시 만나니 그저 좋다.


자율성의 상실과 무분별한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플라스틱의 대량 수용으로 현시대는 인간에게 가장 큰 영양소를 제공하는 자연이 그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각들을 융해시켜 자연과의 조화를 주조하여 새로운 모티브가 공명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작품 자체 고유의 에너지로 인해 대중의 각각의 감각적 힘이 ‘어떻게’를 압도할 수 있고 내면에서의 울림을 섬세한 체험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발전할 수 있다. 형태와 색채 사이의 상호 불가피한 관계에서의 내적인 음향이 정신적으로 영향이 될 때의 실체에는 고유의 뉘앙스로 인해 특별한 향기가 난다. 자연을 상징화한 파랑과 초록 그 외의 다양한 색이 형태와의 연계로 객관적인 껍질에서 주관적인 실체의 울림까지 퍼지는 과정을 관찰되는 시간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잃어버린 ‘무엇’의 재발견으로 아우라는 다시 존재하게 된다. 바닷속과 숲에 둥둥 떠다니고 버려져 있는 크고 작은 플라스틱을 묘사했다. 형태를 다각적 시선으로 분산시키고 대상의 실체 크기를 일정한 크기로 평면 화하면서 한계를 없애고 형태는 일정한 색과 선으로만 묘사후 굳어지면 표면이 보일 수 있는 접착물질을 각각의 형태 위에 도포하면서 질감을 나타내었다. 이 질감으로 인해 조명(빛)의 각도에 따라 표면의 형태들이 반짝이는 상태로 보일 것이다. 마치 빛나는 바다의 아우라를 잠시 느끼겠지만 멀리서 감상하면 아름다운 바다(파랑)와 숲(초록)을 연상할 수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실체는 아우라의 붕괴를 느끼게 되는 우리가 쓰다 버리게 되는 형태를 그린 쓰레기일 뿐이다. 쓰레기가 되기 전 물체는 인간에게 유익한 물건이었지만 이 대상들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다. 형태와 형태 사이의 미세한 플라스틱은 수많은 하얀색의 작은 면(알맹이)으로 표현되었다. 나뭇잎 사이의 작은 씨앗을 하얀색 알맹이로 표현되었으며 씨앗의 발아로 인해 성장하고 웅장한 자연의 근본적인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하여 생각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할 길은 없다. 자연을 다스리는 인간의 모습의 허와 실에 이 작품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시대에 자연과 인간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어떠한 필연성의 법칙을 유도하거나 사유하면서 다시 한번 몰두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 rrr(Reduce:쓰레기 줄이기,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 운동으로 친환경 구현을 모티브 한 작품으로 파랑과 초록을 재구성한 개념 미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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