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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Nov 21. 2022

전화위복 轉禍爲福 #1

또 다른 기회


“작가님, 공모전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일단 OOO 공모전에 선정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공모전에 수상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현 상황으로 운영위와 회장단에서 충분히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결정된 것은 동시 수상/선정은 불가하다..입니다. 작가님의 상황에서 유리한 결정을 하시면 운영위에서는 그 결과에 따라 진행하려 합니다.”



“이번 전시 선정되신 작가님 축하드려요!”

“와! 감사합니다. 전시일정은 최대한 나중에 할게요.”

2020년초 귀국후 코로나로 집콕으로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장례, 리모델링 등 한번도 하지못한 일을 혼자 감당하면서 나의 미래를 위한 계획은 멈추어야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서 가는것을 탓하기보다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자고 마음먹었다.

전시 공모전과 일과 작가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의 삶에서 아직도 꿈꾸어야만 불안감을 해소하는 생활에 지칠될 즈음…


기다리던 합격 소식으로 인해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은 2018년 독일에서의 전시와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저 그런 톱니바퀴 속에서 불안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감사함을 찾으려고 독일 친구들과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소통을 하지 않았다. 벌써 2년의 작업 공백 시간은 전시의 부재로 작품의 구상을 위해 공백 기간 동안 나의 내면을 관찰하고 통제하는데 집중해야 하고 미술을 가르치는 일과 병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많은 집중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새벽시간까지는 작업에만 몰두하였다. 전시를 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떨림과 긴장, 아픔과 기쁨 이런 감정들과 육체적 반응들과 감정들과의 생활 끝에 나 자신을 믿고 전시 오프닝과 함께 한 달여 정도의 전시회를 무사히 마쳤다. 작품으로 대중들을 만나는 시간들이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과의 교감의 표현이 작품으로 나온 것이라서 독일의 유학생활들이 다시 떠올랐다. 독일에서는 전시를 할 때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마지막 전시 조형적 마무리까지 온전히 작가가 했다면 한국은 도록과 리플릿과 설치 도움이 까지 서포트 해주는 것이 난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독일에서는 대학 공부까지 독일어로 해야 했으니 직업이 3개에서 지금 한국에서는 직업이 하나 줄었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말도 잘 통하고 요리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는 한국 생활과 시스템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적응하는 것도 재미있기만 하니 말이다.


2021년 12월, 2022년 7월 기획전시를 무사히 마쳤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 전시마다 40-60원 정도의 재료비 정도를 지원해 주는 전시회였다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했다.

작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소양은 작품의 가치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경험해본 나를 만나보았고 세상과의 교감도 절대자와의 교감을 경험해본 나를 만나보았기 때문에 난 자신감의 기준이 어디서 와야 되는 줄을 알고 있었다. 자신감을 위해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또한 배운 어느 날들은 쌓여서 나의 작품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고 지금 이렇게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다.

난 믿는다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조건들은 언젠가는 따라와 줄 거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요구하고 강요하는 한국에서의 문화를 그저 즐기자고 말이다.

그림을 너무 많이 그려서 엘보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해서 7월 전시에 100호 하나만 추가된 것에 다작이 아니라 죄책감으로 다가왔지만 이것이 불안감으로 키워지기 전 그저 이것도 감사함으로 다음 전시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여러 공모전에 지원하면서 이번 2022년 한 해 전시를 3-4회가 되기를 목표로 세운 첫 번째 항목을 위해 또 다른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공모전도 도전 해보리라 마음먹고 나이에 제한이 없는 공모전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작품 반입은 부산에서 운반해야하기 때문에 돈이 제법 들었다. 차에 실어서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한다고 차를 살 때 선택했던 조금 큰 트렁크가 있는 차를 선택하고 반입은 운송업체에 대리인 반입을 하고 반출은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운전한 지 얼마 안돼서 무섭지만 직접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차로 운반하기로 했다. 이런 나의 계획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미래의 걱정을 지금 사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소식만을 기다리며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선정되신 것 축하드려요 작가님! 최종 합격을 축하드려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화가 아닌 메일로 왔다. 내가 스팸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온 소식이 묻힐 뻔했다. 발표날 이메일과 부재중 전화를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떨어졌구나… 하고 그다음 날 우연히 스팸메일을 확인했는데 최종 합격의 소식이 있었던 것이다.

휴… 다행이다. 생전 보지 않는 메일함을 보게 한 것이 감사했다. 내용은 2주 뒤의 서울에서의 오리엔테이션 일정이었던 것이다. 너무 설레어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또 보았던 것 같았다.


그러고 며칠 뒤 지원한 다른 공모전에서 장문의 문자와 전화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우수상으로 수상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전시회 일정과 반출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S공모전 포털사이트에 우수상으로 올라온 이미지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니 문자가 왔는데 수업 후 문자를 본 난 눈물이 날 뻔했다. 이번 연도 3-4번 전시 횟수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2개의 서울 공모전 합격 소식으로 기쁘지만 운송으로 인해 통장잔고가 줄어들 것이 내심 걱정이 되곤 했다. 부산에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인프라가 서울에 모여있기 때문에 부산에 살고 있지만 중심을 보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돈은 더 열심히 일해서 모으면 되고 작업은 잠을 줄이고 작업에 집중했다.  엘보 통증으로 에너지가 많이 없으니 일을 늘려야 하는 것이 부담되서 항상 긴장감을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서울행을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첫 자차 장거리 운전이기 때문에 길치인 난 로드맵으로 밤마다 어떻게 가는지 몇 번이나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다음날 수상된 한 공모전 담당자와의 대화 도중 동시 수상에 대해 확인하던 중 나의 작품이 동시 수상에 걸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공모전 규칙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난 담당자에게 모든 것을 물어봤었고 다른 합격한 모든 소식들의 내용과 연락처까지 공유를 부탁받았다. 동시에 두 분의 담당자가 전화가 왔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군데의 공모전에서 동시 수상이라는 명목 하에 포기를 권유받았다. 이미 홈페이지에 올라간 나의 이름과 전시 작품을 모두 부정당하는 때라는 것을 알지 못해서 오히려 난 그분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었다. 두 분의 담당자께서는 서로 이타심으로 본인이 소속되어있는 공모전보다 다른 공모전이 더 좋다는 말로 나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부탁을 하였다.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부탁받고 수업을 마친 밤 9시쯤 차 안에서 결정을 하고 문자를 보내주어야 했다.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동시 수상은 탈락된다고 했는데 난 선정만 되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선정을 수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온 결과때문에 회의까지 진행되었다고했다. 관계자들의 의견은 선정이니 상을 주어야한다와 다른 작가들의 건의로 나중에 이미지가 실추가 된다는 의견들로 맞서면서 결국 나의 포기로 선택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왜 수상이라고 해석했는지 이유를 다시 물어보았다. 그리고 다른 공모전 담당자도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다른 작가들의 건의가 우려스럽다 라는 것이라는것을 알고 또 선정된 공모전에서 후원금을 상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선택의 기로에 있는 나를 위해 기다려주었다.

나의 의견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님을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S공모전 포털사이트에 새로운 수상자의 우수상으로 올라온 이미지


마음이 안 좋다. 작가로서 첫 도전 서울 도전 여정은 극과 극을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안 좋은 것이다.

그날이 왔다.


“선아! 서울 잘 도착했니?

“네, 잘 도착했고 숙박하는 곳으로 이동 중이에요.”

어머니와의 안부전화를 마치고 며칠 뒤에 인터뷰와 실물심사 일정을 위해 서울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민박집으로 항하였다. 난 얼마 남지 않은 9월의 부산 전시를 위해 서울에서 머물면서 며칠 동안 작업할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바쁘게 민박집으로 항하였다.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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