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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Nov 29. 2023

내가 만드는 나만의 향취, '향수 만들기'

방산시장에 다녀오다.

1. 자기표현은 인간의 본능!


예로부터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게 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인류가 뗀석기를 만들어 쓰던 그 시기에서조차 온갖 예술품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시대 유물을 보면 영문 모를 조개 가면과 눈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맹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에도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똑같았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타자와 나를 구별하는 걸 말하기도 한다. 타인과 나의 다른 점을 찾는 것, 즉, 나만의 특별한 점을 찾아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표현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독자성'을 보이기 위해 애를 써왔다. 꽁지깃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앵무새처럼 온갖 풀과 깃털과 뼈조각들로 관을 엮는가 하면, 굳이 누에를 괴롭혀 비단이란 걸 만들고 그에 수를 놓고 그걸 다시 옷으로 지어 입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도 했다.(그것의 생산자와 향유자는 높은 확률로 일치하지 않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우리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림으로써 자기 생각을 후대에까지 오래도록 전했다. 이런 자기 표현은 시각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는 말도 했다. 이윽고는 노래도 했고, 그러면서 온갖 종류의 음악도 지었다. 인류의 도전은 후각의 영역에까지 뻗쳤고 기어코 향수라는 것도 만들었다. 결국 뭐든지 자기표현의 영역이 들어 맞는 것 아니냐고? 넓게 보면 그 말도 맞다.

내가 굳이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나 역시 자기표현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니는 것만 해도 뻔하지 않나.(웬만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글을 나서서 쓸 리 없다.) 내가 선택한 자기 표현 방식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취미 가지는 것이었다. 내가 온갖 종류의 DIY에 빠져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요즘 가지게 된 새 취미는 다름 아닌 '향수 만들기'다.


2. 나만의 향이 가지고 싶어


어느날 나는 문득 향수가 만들고 싶어졌다. 쌀쌀해진 날씨에 맞게 무언가 따뜻하면서도 묵직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독특함이 묻어나는, 그런 향수 말이다. 보통 향수를 가지고 싶었다면 백화점에 갔으면 될 일이지만 백화점 향수들은 내가 사기엔 너무 비쌌고, 기왕 향수를 산다면 남들이 잘 쓰지 않는, 그런 독특한 게 가지고 싶었다. 그런걸 가지려면 결국 내가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사람들을 두고 '홍대병'에 걸렸다고 한다. 남들이 찾지 않는 것만 골라 찾는 사람이란 소리다. 하하.

처음에는 집 근처 공방을 찾아갔다.(향수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지 불과 5시간 후의 일이었다.) 36가지 향료 중에서 4가지를 조합해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거였는데, 조향사 분이 친절하시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향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향수는 대호평이었고, 나도 그게 마음에 들었지만 뭔가... 2% 정도 부족했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에세이를 종종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이상한 곳에서 알 수 없는 추친력을 발휘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며칠 후 나는 방산 시장에 갔다.



3. 방산시장: 온갖 부자재의 메카

"방산시장이요? 선생님, 단추 사시게요?"

"아뇨, 향수를 만들려고요!"


방산시장은 광장시장 근처에 있는 부자재 시장이다. 동대문 시장과도 비슷한데, 내가 거길 굳이 찾은 이유는 거기에서 향수 원료를 많이 판다는 인터넷 포스팅을 봤기 때문이다. 언젠가 무턱대고 동대문 시장에 귀걸이 부자재를 사러갔다가 발바닥이 터질 뻔했던 나는 기특하게도 그 다음날의 나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해놓았다. 몇몇 후보군을 정했고, 그 중에서 가장 접근성도 좋고 이름도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 골랐다. 가게 이름은 <아이리스 캔들>. 제목에 캔들이란 게 들어간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향수 파는 곳은 캔들이나 비누 재료도 같이 파는 모양이었다. 향긋하기는 마찬가지니까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을지로 4가에서 내렸다. 거기서 쭉 가다가 왼쪽으로 돌면 청계천이 나왔는데, 날이 추워서 벌레가 없고 아주 쾌적했다. 손이 좀 시렵긴 했지만 역에서 아주 멀진 않아서 버틸만 했다. 나의 오랜 벗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 걸어가노라면 거대한 부자재 시장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 입구엔가 들어가서 왼쪽으로 도니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아이리스 캔들>에 말이다.


이런 부자재 가게의 장점은 정말 다양한 재료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그 가게에 들어섰을 때 나를 압도한 것은 엄청나게 많은 향수병이었다. 병들의 디자인은 아주 다양해서 고르는 재미가 있었고 별로 비싸지도 않아서 좋았다. 가게 한 편에는 깔끔하게 라벨을 붙여 정리한 갈색 병들이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늠름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향수 원료들이었는데, 백화점에 납품하는 좋은 향료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싸구려 같지 않았다는 소리다.

사장님은 친절했고 향료들은 향긋했다. 시향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코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내가 찾던 향을 찾을 수 있었다. 공방에서는 시간 제한이 있어서 시향 시간이 5분밖에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분위기도 훨씬 편했고 더 다양한 향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향료 2통와 향수 베이스 하나(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식물성 주정 어쩌고 저쩌고인데 손에 닿으면 차가워졌던 걸 보니 알코올이거나 알코올 비슷한 무언가인 거 같았다.), 향수병 여러 개를 샀다. (100ml씩 사면 내가 마시고 죽어도 다 못 쓸 거 같아서 50ml씩 샀다. 흔쾌히 승낙해 주신 사장님의 융통성에 찬사를! 이런게 시장의 묘미 아닐까?) 그렇게나 샀는데도 4만원도 되지 않았다. 야호! 


4. 찾았다, 내 향기

향수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향수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향수 베이스 8에 향료 2의 비율로 섞어주면 된다. 이때 각 향료간의 비율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조절하면 된다. 향료 비율이 높아지면 더 오래 가고, 베이스 비율이 높아지면 디퓨저처럼 좀더 은은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온 것들과 내가 가지고 있던 다른 향수들을 이리 저리 섞었다. 섞고 맡고 섞고 맡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짠! 어느새 내가 찾던 향이 완성되었다. 아, 쉽다, 쉬워!

내가 만든 건 자연스러운 체리향과 나무향, 약간의 숯 냄새 따위가 은은하게 섞인 향이었는데, 너무 달지도 않고 어른스러운 무게감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도 4D가 되었다면 여러분에게도 향을 공유할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유감이다. 어디선가 고급스러운(?)체리 향이 나는 여자와 지나친다면 그게 나인 줄 알길 바란다(?). 내 향수를 만들고도 원료가 한참 남아서 선물용으로도 몇 개 더 만들었다. 그러고 있노라니 다른 향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다들 '향 덕질'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여러분도 새로운 종류의 자기 표현 방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만약 향수 만들기에 흥미가 생긴다면 방산시장에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겸사겸사 광장시장에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혹시나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내가 갔던 가게의 주소도 링크도 남겨 놓겠다.

방산시장 아이리스 캔들



* 이 글은 딱히 뭔가 대가를 받지 않았으며, 그냥 제가 쓰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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