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폭풍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나는 때때로 미움에 대해 생각한다.
미움은 결코 쉬운 감정이 아니다. 미움 받는 일이 가혹한 만큼 미워하는 일 역시 끔찍하기 때문이다. 미움은 마음 안에 폭풍을 일으키고, 그 폭풍은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으니 아무리 그럴싸한 허울을 붙인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좋은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나약한 존재다. 우리는 쉬이 우리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며 우리의 남다름을 자만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감정의 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움은 그러한 것 중 우리 마음에 가장 손쉽게 싹트면서 가장 어렵게 제거되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이 점이, 미움을 어렵게 한다.
미움이 내 안에 싹트는 날이면 나는 하릴 없이 괴로워진다. 나 또한 흠 많은 사람인지라 남의 흠에 대해 논하거나, 그의 미운 점을 떠벌리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나는 그토록 옹졸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고 만다.
가장 괴로운 점은, 이러한 미움의 대상이 항상 미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개 나는 그 사람의 좋고 고마운 점을 알고 있다. 그가 이토록 미운 짓을 하게 된 경위나 사연 따위를 익히 잘 알고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고 공감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었을 때, 그 미움은 더욱 날카롭게 내 가슴을 난도질한다. 내가 알던 바는 불명확해지고 그 누군가와 나 사이의 관계는 무너져 내린다. 나를 이루는 많은 세계 중 하나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순간이다. 미움은 이토록 끔찍하다. 미움은 온전히 미움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므로.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움의 배경에는 '미운 짓'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나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시스템적인 문제라든가, 아주 오랫동안 고착화된 낡고 달갑지 않은 습관 혹은 관습 같은 것이 그렇다.
이와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싹트는 어떤 감정이란 아주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 자신의 미움이 향하는 방향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미움은 정당한가? 옹졸한 내 자아는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한다고 한들 이 감정이 가실 길은 없고, 나는 다만 이 마음이 잊히기를, 혹은 또 다른 감정에 가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쯤 나는 다른 무언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워하는 나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나 자신으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지지만, 나는 나로부터 온전히 숨을 수 없고 한 사람은 한 사회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지지 못하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만 염불 외듯 이 말만을 되뇌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 안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그 자리에는 해가 뜰 것이며 마른 땅 위로 다시금 싹이 움틀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