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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Dec 13. 2023

21세기의 로맨틱 '모던타임즈'

영화<사랑은 낙엽을 타고> 시사회 리뷰

* 이 글은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 참석한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과의 로맨스는 많은 사람이 꿈꾸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온 세상이 새로운 사랑에 대해 노래하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장악하는 영화 중 적지 않은 수의 장르가 로맨스, 멜로, 로맨틱 코미디인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로맨스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우리가 가진 어떤 현실을 재치있고 로맨틱한 방식으로 재구성해낸다는 점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코미디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로코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달콤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것이 기반한 현실이 어떻고, 감독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밀크 초콜릿이 될 수도 있고, 카카오 99% 초콜릿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전자를 향유해 왔지만, 때때로 어떤 영화는, 그것이 포함한 씁쓸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기억에 남곤 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헬싱키에 사는 안사와 홀라파는 어느 가라오케 바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렸다. 몇 차례의 우연 끝에 두 사람은 데이트를 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서로에게 연락할 방법을 몰라서 몇 번이고 엇갈린다. 몇 번의 갈등과 우연한 재회가 반복되고, 두 사람은 마침내 연인이 된다. 우연과 필연을 통해 이런저런 헤프닝이 벌어지고 마치내 맺어지는 연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러한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두 사람은 헬싱키의 가난한 노동자다.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빵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실직한다. 당장 빵 하나 살 돈조차 아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데이트는 커녕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대로 해야만 한다. 라디오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야기가 시종 울려 퍼진다. 낭만 한 조각 찾아보기 힘들다.

홀라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다. 세상이 그를 슬프게 하고,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다시 슬퍼지고, 그것을 다시 지우려면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어서 그는 술꾼이 되었노라 말한다. 직장에서는 개인의 안전보다 그들의 흠결을 찾기에 급급하다. 결국 홀라파는 다쳤으면서도 도리어 해고되고 만다. 

상황이 이래서일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시종 무표정하다. 재미있는 농담을 말하더라도 어투는 건조하기 짝이 없고 인물들은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격렬하게 분노하지 않는다. 사랑을 고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분히 '연극적'이다. 이런 작위적인 연출은 마치 그들이 헬싱키라는 거대한 사회의 태엽인형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는 인상마저 주는데, 이점에서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연상케 한다. 부조리함을 내세우는 직장은 기꺼이 그만두겠노라 외치는 안사와 괴롭고 답답하기만 한 현실 속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술에 손을 대는 홀라파를 보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서처럼 인물들이 자신이 부품으로 속해야만 하는 그 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저항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토록 고달픈 현실이지만 두 사람은 그럼에도 사랑하고, 돕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들의 고달픔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을테지만 홀라파는 술을 끊었고, 안사는 그의 외로움을 덜어줄 가족(개)과 연인을 얻었다. 지극히 평범한 어느 소시민들의 로맨틱 코미디는 이렇게 마무리 지어진다. '모던 타임즈' 속 채플린의 말처럼, 그들은 그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을 찾을 것이며,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이 무뚝뚝해 보이는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많이 고달픈 요즘이다. 물가는 치솟고 날씨는 이상하다. 멀지 않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저런 정치적 이슈들은 매일 같이 불거진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헬싱키에 사는 두 사람의 사정과 아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있듯, 우리의 삶에도 희망은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그 희망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아간다. 


날도 추운데, 이런 영화 한 편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이 무뚝뚝한 핀란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빛나는 희망을 건져 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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