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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Aug 12. 2021

나는 알고 썼을까?

#정말 안일했던 건 나였다

이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후회’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야구에 관심을 가졌던 건 명쾌했다. 단순한 언어로 정리된 한 장의 기록지로 세 시간이 훌쩍 넘는 경기를 보지 않아도 흐름을 읽기 쉬웠다. 또한, 통계학이 야구에 스며들며 숫자로 경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즉, 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숫자를 통해 야구를 깊게 분석할 수 있다는 건 외부인인 나에게 무기였다.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 접해봤을 영화인 ‘머니볼’은 현역 시절 외면받은 단장 빌리 빈이 경제학 전문가를 야구단에 합류시켜 구단을 운영하는 줄거리다. 영화는 야구 통계인 세이버 메트릭스가 얼마나 성적을 향상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구단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실제 이야기다 보니 더욱 몰입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제는 국내 프로야구단에서도 분석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고용해 활용하고 있다.


한 가지 말하자면, 나는 수학을 굉장히 싫어한다. 중학생 이후로 정답과 오답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수학 때문에 성적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학이 발목을 번번이 잡았고,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결정하는 데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야구기자로 일하며 통계를 이용한 기사를 많이 썼다. 이는 좀 더 내용을 객관적이게 하고, 좁게는 독자에게 나의 주장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기제가 됐다.

  

야구 기록지


소위 ‘수포자’인 내가 세이버 메트릭스를 기재하며 작성했던 기사의 대부분은 이랬다. 

‘BABIP 수치를 살펴봤을 때, 올 시즌 그의 성적에는 행운이 많이 작용했다.’

‘감독은 위기에서 선수 교체에 실패했다. 투수의 잔루율을 고려했어야 했다.’

‘슬라이더에 약한 타자에게 던진 직구 실투…배터리의 안일했던 볼배합.’

  

종종 친한 구단 직원 A와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A는 내가 기자가 되기 전에도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나는 A를 형으로 많이 따랐는데, A는 술자리에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선수의 득남 소식이나, 그가 리더십이 좋다는 일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좋은 기사를 내보내기 위한 직원의 책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곳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알려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라고 돌이켜본다.


그날 마운드에 올랐던 투수, 타석에 들어섰던 타자의 아이가 아픈 날이었다면…. 객관적이라고 불리는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분명한 건 나는 알고 쓰지 못했다.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는 세상에 많다.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뿐이다. 이제는 과거의 일을 후회에도 소용이 없다. 나는 기자를 그만뒀고,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로 기사를 작성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글은 쓰고 있다. 나의 이야기가 주제이기에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조금이나마 ‘뻘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노력하려고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적인 내용이라 나도 선뜻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이 나에게 말하지 않는가, 글쓰기는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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