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가 좋았던 아이
#적당한 거리를 찾는 일
반장보다는 부반장이 좋았다. 그래서 부반장을 입후보하여 여러 차례 맡은 기억이 난다. 어렸던 나는 주변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반장과 부반장이 뭔 차이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금 웃기지만 그래도 나만의 방식이라면 방식이었다.
공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학창 시절, 반에서 1등을 한 기억이 많지 않다. 내가 속한 반에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한 명 꼭 존재했다. 드문드문 1등을 했던 적도 있지만, 이는 성적표라는 공식적인 서류로 기재되지 않는 기말고사에서였다. 지금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학기가 끝나기 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성적표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합산된 성적이 쓰여 있었다. 그래도 나는 2등이 편하고 좋았다.
잡지사에서 근무했을 때, 외부 필진의 글에 담길 인터뷰를 대신 맡거나, 편집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담당할 지면은 아니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날따라 인터뷰이와 죽이 잘 맞았고, 인터뷰가 잘 끝났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글을 쓰는 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외부 필진에게 녹음 파일을 넘겨줬다. 이튿날 새벽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인터뷰가 정말 재밌어요. 저도 웃으면서 들었어요. 인터뷰를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집중해서 써보겠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을 편집하고, 이를 그들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종종 있었다. 당연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바이라인에 내 이름이 올라가 독자에게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그때마다 재밌는 글 하나가 나온 것 같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괜찮은 일이라면, 내가 두드러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내가 첫 번째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일이 괜찮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기에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주변에 있으면 슬퍼진다. 내가 그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 이것이 내가 두 번째를 좋아하는 이유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즐길 때, ‘서브병’에 걸리고 만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이장우(이재욱 분)가 그랬고, <멜로가 체질>의 이은정(전여빈 분)이 그랬다. 주인공의 삶은 나와 너무나도 달라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내러티브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적당히 눈에 띄며, 그렇다고 너무 속되지 않는 이야기 말이다.
소설가 김금희의 산문집인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그는 직업적인 고민을 들고 지인인 P와 만났다. P는 오래된 동네에서 본 큰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P는 나무 자체를 설명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과 무심히 봤던 식탁 풍경에 대해 전해줬다고. 그는 이야기를 듣고 큰 나무를 상상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곁에 없지만, 어딘가에 분명 사려 깊게 자리하고 있을 존재들에 대해 믿는 일이라는 첨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