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하나 있었다. 나에게는 꽤나 심각한 일이었다. 독서라는 취미에서 한계를 만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틈틈이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했고, 꾸준하게 진행했다. 그런데 활자를 읽는다는 행위 외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독서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좁게는 소비적인 측면에서 책을 구매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행위에 행복감을 경험할 수도 있으며, 습득한 정보를 통해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좀 더 독서를 다양하게 즐기고 싶었던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그 공간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는데, 글과 사진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과도하게 품을 들이면 금방 싫증이 날 것 같아서, 책의 이미지와 읽으며 좋았던 구절을 첨부하는 정도였다. 독서와 함께 기록을 꾸준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새삼 놀라웠는데, 이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었다.
반가움에 감성적인 ‘북스타그램’ 피드(feed)를 만나면 좋아요를 누르고, 흥미로운 계정에는 팔로잉을 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계정도 팔로워가 조금씩 증가했다. 처음의 목표는 개인적인 기록을 위한 운영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과 내용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취미를 공유한다는 건 헛헛한 마음에 위로가 되기 충분했다.
관계라는 단어에 다시 고민하는 계기였다. 관계를 보수적으로 바라봤다. 정확히는 넘을 수 없는 ‘선’을 긋기도 했다. 물리적 실존감이 전제되지 않는 관계가 의미가 있을까, 하곤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느슨한 관계에 대한 외면이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우리는 외부의 무엇과 맞서고 있다. 점이 선이 되고, 면으로 커지는 일상성이 깨지는 일이었다. 곧 원래의 것으로 복귀가 가능하리라는 얘기도 들리곤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연스레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후렌드’라는 신조어가 있다. MZ세대에서 쓰이는 단어인데, 누구(Who)와 친구(Friend)가 결합됐다고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누군가는 공허함을 채우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토록 아니라고 다짐했던 기성세대의 어느 공간에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무섭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며, 그 일을 업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도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실제로도 낯을 가리곤 하는데, 인상적인 피드나 글을 접하면 나의 감정을 무한하게 표현하고 싶어도 절제하게 된다. 댓글을 작성하거나 공유하는 행동까지 가지 못한다. 뭔가 부끄러움이 올라와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각각의 공간에는 운영하는 사람의 성향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나와는 달리 누군가는 적극적이며, 뭐라고 해도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것에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이제는 나도 함께 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