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니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 밖에서는 알지 못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퇴사하고 사수와 같은 A와 만났다. ‘사수와 같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공식적인 직무 상 선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A를 믿고 따랐고, 이제는 둘 다 조직에서 나왔지만 나쁘지 않았던 기억에 사적으로 우리는 술자리를 종종 만들었다. 나에게 그는, 조언을 구하면 해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위로는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A는 5년 넘게 만나던 연인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때, 이따금 A에게 연애는 잘하고 있냐고 묻곤 했다. 돌이켜보면 쉽게 말했던 당시의 인사치레가 후회된다. 그러던 중 내가 먼저 회사를 떠났고, A는 그로부터 한 달 뒤 조직을 벗어났다. 어느 주말 밤으로 기억한다. A는 나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내왔고, ‘헤어졌음’을 알렸다.
A와 얼굴을 마주한 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입을 열었고, 곧 그의 실연으로 말이 닿았다. A는 지난 1년 정도는 위태위태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일을 똑 부러지게 하던 A가 연애에서는 그러지 못했구나, 생각했는데 이내 칠칠한 연애가 뭔지 나 스스로도 정답을 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연애 상담을 해줄 만한 대단한 연애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그치길 반복하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나는 비가 쏟아질 때마다 하늘도 슬퍼하네, 하며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런 농담까지 하지 않으면, A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도 무거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A의 입에서 나왔을 때,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어온 연애라면 외부자인 내가 봤을 때도 옳지 않은 관계라는 걸 확신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딪히며 관계를 유지한 그를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적어도 당신의 잘못은 절대 아니라고밖에.
모순적이게도 또 다른 지인인 B는 A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우연한 계기로 메시지를 건네던 우리는 흔하디 흔한 근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B는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만나게 됐다고 했다. B도 A와 비슷하게 긴 연애를 했었다. 나는 그의 연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지켜봤다. B가 한 연애의 시작에는 내가 관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B와 나는 오래된 친구다. 물론 우리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나는 그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B는 연애 상담을 나와 자주 했다. 기분이 다소 상할 이야기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힘들면 놓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B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까지 관계를 유지하다가 작년 실연했다.
내가 지켜본 1년간 B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분하게 해왔고, 나이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어른이 되어가는 게 보였다. 연애 외에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곧잘 나의 고민들에 조언해주는 걸 들으며 때로는 건방지네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이는 다시 옛 연인을 만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상처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주한 현실은 비록 다르지만, 소중한 인연들인 A와 B에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연애에 장애물이 생기면, 나는 곧잘 회피하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나 A와 B는 부딪혔다. 결과가 어찌 됐든 말이다. 그들은 나보다 어른임에 분명하다. 나는 그들에게 같은 말을 해줬다. “무한히 응원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