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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y 11. 2023

샤브샤브형 인간

딜레탕트적 이방인을 희망하며.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이런 댓글을 하나 보게 되었다.

원본을 캡처하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글로 옮겨 본다.



질문자 : 애매하게 발만 담그고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필요하다.

답변 : 샤브샤브?



별거 아닌 유머인데, 보는 순간 그대로 빵 터졌다.

질문자가 말하는 사람이 딱 나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샤브샤브인건가?ㅎㅎ'

재미있지만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질문자가 묻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바로 딜레탕트(dilettante)이다.

이탈리아어인 이 딜레탕트는 예술 애호가 또는 어설픈 지식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며, 영어로는 아마추어(amateur), 우리말로는 호사가(好事家) 정도가 유사한 뜻으로 사용된다. 당연하겠지만 현대와 같이 모든 일이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서 딜레탕트 또는 아마추어라고 하면 그리 긍정적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고 말이다.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하긴 했지만, 내가 딱 그런 전형적인 딜레탕트형 인간이다. 두루두루 어설프게 알지만 특출난 전문성으로 남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무기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다.


장점이 있다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지니고 있어,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는 능력에 비교적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일도 기존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나름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도로 해결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다만 단점으로는, 그런 만큼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움이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생명을 얻어 지속성을 갖는데, 그러지 못하니 조용히 사라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확실히 세상 살기엔 아마추어보다는 전문가가 편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마추어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딱히 좋아하는 일은 없어도 호기심을 갖고 이일 저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웃거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가 끌리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일을 찾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그래도 많은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그걸 무기로 삼아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딜레탕트라는 낯설고 어딘가 있어 보이는 표현보다는 샤브샤브가 왠지 마음에 끌린다. 그런 표현에 더 이상 기분 상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느낌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설정한 삶의 방향에 맞게 가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아 기꺼운 기분이다. 그렇다, 욕망에 충실해 목적을 잃어버린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주위를 겉돌며 애매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나는 샤브샤브형 인간으로 남고 싶다.


나라는 샤브샤브형 인간이 정한 삶의 여정에는 직장인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고, IT 개발자도 있고 번역가도 있다. 모두 끌어안고 끝까지 갈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럴 역량도 없는 데다 이것들이 진정한 나의 정체성도 아니니 말이다.


나는 그저 낯선 세상에 놀러 온 이방인처럼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다양하게 즐기다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여행이 끝날 땐 마음에 남은 한 줌의 아쉬움도 남지 않기만을 희망한다.



#딜레당트 #아마추어 #호사가 #샤브샤브 #이방인 #정체성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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