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만난 이탈리아, 그리고 고전의 위인들이 거닐던 피렌체의 거리는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 시절의 향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단테와 마키아벨리와 같은 사상, 문학가에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렐란젤로 그리고 라파엘 등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가 있다면 그 한 페이지를 차지했을 위인들이 살던, 이태리는 나에게 있어 마치 화려한 어벤저스 영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방문하는 그런 감정을 들게 하는 그런 장소라고 볼 수 있다.
화려한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도 즐거웠지만, 그곳에서 내가 찾은 건 바로 이것. La Divina Comedia, 영어로는 The Divine Comedy, 우리나라에는 신곡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고전 원서이다.
단테 알리기에리 - 신곡
누군가 나에게 이탈리아어를 잘해서 이 책을 샀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 주겠다. 하지만 책은 원래 읽으라고 있는 것이니만큼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라고 지금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혹시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 막연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때는 이 책을 번역해 보는 걸 다음 목표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일상의 비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라고.
그 말이 정말 맞는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일상에 빠져,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던 나를 위한 적절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고나 할까. 이토록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울 것들이 많은데, 어째서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자극적이고 작위적인 글과 미디어에 감정을 쏟고 휘둘려 왔는가? 왜 주위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고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내팽개치고는 싸구려 술 같은 중독적이면서 해롭기만 한 감정들로 마음을 채우며 정신을 흐려왔는가?
일상은 사람에게 안정과 마음의 평안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속적인 압박을 주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그 일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빠져나와 줄 필요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낯선 글로 된 당장 읽지도 못할 이런 어려운 책을 산 것은 단순히 여행을 기념하거나 정신적 허영을 충족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바로 일상에 매몰되어 덜 중요한 일에 삶을 쏟지 않을 것을 스스로에게 환기시켜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일상의 환기가 필요하단 점에 있어 글을 쓰는 것과도 유사하다.
글을 쓰다 보면 잘 써질 때도 있고, 잘 써지지 않아 버벅대거나 진도가 잘 나아가지 않는 때가 많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글을 완성한다 쳐도 바로 완성된 글을 보며 퇴고를 한다면 그 글이 결코 눈에 잘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럴 땐 짧게는 한두 시간 정도 쉬고 나서 퇴고를 시작하면 한결 수월해지고 부족한 점도 눈에 더 잘 보이게 된다.
그 행위가 마치 매몰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며 잠시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것 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어쩌면 글에서도, 일에서도, 삶에서도 여행의 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인생의 과정에서 스스로 써 내려가는 개개인의 스토리가 바로 극본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La Divina Comedia인 것은 아닐까?
나만의 신곡을 완성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그것이 신이 명령한 것이든, 자기의 마음을 따라 행하는 것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