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를 닮는 건 유전일까, 아니면 환경일까?
당연히 둘 다이겠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그 결과가 단지 너무나도 신기하기 때문이다.
나와 와이프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는데, 활발한 성격과 나서길 좋아하는 성향을 보면 와이프를 꼭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언뜻 언뜻 보이는 행동에서 나를 닮은 모습을 보여 흠칫 놀라게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혼자 스마트폰을 보며 여유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저녁, 별안간 딸아이가 다가와서는 자기가 책에서 봤다며 무언가를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말하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줄거리를 주저리주저리 길게 떠드는 걸 즐기는 아이이다 보니 그날도 나는 그냥 심드렁하게 '어, 어~ 아 그래?' 하는 영혼 없는 추임새를 간간이 넣으며 아이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들려오는 이야기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어~ 그래서~ 신부님이 .... 그랬는데? 촛대를 훔친 거야.... 그래서 경찰이 왔는데?..... 신부님이 준거라고 그랬어!"
'응? 뭐지? 설마 지금 장발장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든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이에게 물었다.
"그거 혹시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 이야기야?"
내가 의아한 듯 돌아보며 묻자 딸아이는 맞다면서 후다닥 뛰어가 자기가 읽던 만화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손에 들린 그건 바로 아이 엄마가 한 1년 전 즈음엔가 사주었던 브리태니커 시리즈 중 하나로 그중에도 [세계의 문학]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 책에 나오는 레미제라블부터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리어 왕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책을 보여주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신기하면서도 안쓰럽고, 기특하면서도 우려스러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얘는 이걸 진짜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까?'
'이렇게 호기심도 많고 책도 좋아하는 아이인데, 학원 가고 숙제하느라 바쁘니 원...'
우리 부부는 공대 출신인데다 IT 회사를 다니고 있다.(나는 번역 일에도 다리 하나를 걸친 중이다)
뒤늦게 인생 살이에 현타를 맞고 인문학에 빠져 본래의 성향과 관심사를 깨달은 나와는 달리, 아내는 뼛속까지 공대녀이자 현실주의 자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우리 집 역시 아이의 교육에 엄마의 의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바로 아이의 성향과 관심이 나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인 엄마와 뜬구름 잡지식을 좋아하는 딸내미, 둘은 서로에게 애틋하지만 참 성향이 안 맞는 애증의 관계를 갖는다.
그 덕에 최근 우리 집에선 저녁마다 큰소리가 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이니... 그로 인한 진통이야 말도 못 할 정도이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콩을 물려준 아빠 탓인 것을....
서로가 방향은 다르지만 아내와 나 모두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는 다르지 않다.
게다가 나 또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길이 아니기에 선뜻 권하지 못하겠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부모의 가치관이 너무도 달라 아이가 혼란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애정이 있으니 아이가 잘 극복하고 스스로 중간을 잘 찾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이래서 자녀를 키우는 일이, 나를 돌아보는 수양이라고 하는가 보다.
#자녀 #성향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