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Oct 06. 2023

양 날개로 날아가는 새

육아 이야기


우리 부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성격은 엄마를 닮아 쾌활하고 발랄하지만, 성향은 아빠를 닮아 특이한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아이를 두고 우리 부부는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교육을 시키면 좋겠는지를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주로 어느 학원을 보내고 어떤 교육을 언제 어떻게 시키겠다는 상세한 계획을 주로 말하는 반면, 나는 다소 느슨하게 아이가 원하는 걸 하면서 좋아하는 걸 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결국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이를 사랑하고 잘 교육했으면 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는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던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 부부 사이에서는 아이 교육방침과 관련해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 잦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의견 차이가 있는 식이었다.




나 : 그냥 애가 하고 싶다는 거 시켜주면 안 돼? 굳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학원을 보내면서 매일 숙제를 시키는 게 맞는 거야?

아내 : 지금 공부 습관 안 잡히면 앞으로 더 힘들어져. 아이가 원하는 일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현실에 맞춰 하기 싫은 일도 해낼 줄 알아야 해.



나 : 문제집 같은 걸 풀리기보단 책을 읽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주말마다 가족끼리 함께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던가, 공연이나 박물관을 간다든지 말이야.

아내 : 그런 비 일상적인 이벤트는 방학 때나 여유 있을 때 가끔씩 하면 돼~ 지금은 어쨌든 학업 기초를 다지면서 매일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야.




어떠한 심리적 발로에서 였을까? 

아내와 나는 서로의 말 역시 일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잘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공부로 아이에게 호되게 구는 아내를 모질다고 타박했고, 아내는 괜한 잡지식과 뜬구름 잡는 말로 아이를 현실성 없게 만든다고 못마땅해 했다. 그렇게 서로가 추구하는 생각이 달라 티격태격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애초 우리가 우려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잘 자라주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아내가 원한 대로 점점 공부 습관도 잡혀갔고 학업성취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애초 원했던 대로 책을 가까이하며 역사, 경제, 철학, 과학,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도 호기심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다.



매일같이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어떠한 일을(공부든 운동이든)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해내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과 자긍심을 길러주었다.

동시에 공부로 익힌 지식 외에, 어려서부터 접한 철학, 역사, 과학,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은 아이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러한 아이의 변화의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옳다는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가슴으로 느끼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처음에 각자가 고수했던 생각과 많이 달라졌고 전보다 더욱 서로의 생각을 더욱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의 학업능력이 극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았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조금이지만 부모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맞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듯하다. 머리로는 백번 알고 있으면서도 돌이켜 보면 스스로 편견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이유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새는 한 쪽 날개로만 날 수 없다'라는 건 나와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진리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듯 비록 미숙하지만 아이가 가고 싶은 만큼 스스로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양 날개로서 균형을 맞춰 주고자 한다.

언젠가 그 새가 부모가 달아준 날개를 떼고 자신만의 날개로 날아오를 때 까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페미니스트와의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