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에서의 단상
지난 가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럽은 친환경이 중요한 가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린 워싱이 아니라 진짜 친환경 말이다.
처음으로 파리를 갔는데, 도로가 너무 좁은 거다. 옛날에 만들어진 도시니까 그런가, 하고 아무 생각 없었는데, 파리 시장(市長)이 친환경을 위해 자동차 도로를 줄이고 자전거 도로로 바꿔서 자전거로 다니기 편한 파리를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가뜩이나 오래된 도시라 도로폭이 좁은데, 그걸 더 좁혀서 자전거 도로를 만든 것이다. 차를 타기 불편하게 만들어서 자전거를 선택하게 하는 전략이다. 파리 뿐 아니라, 유럽은 자전거가 주요 교통 수단이다. 아주 먼 거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익숙하다.
하루는 스위스에서의 자유시간에 쿱(COOP) 마트에 가서 델리를 이용했다. 튀김이며 샐러드, 요거트를 신나게 고르고 먹으려는데, 일회용 수저를 유료로 사야 했다. 우리나라는 음식을 사면 일회용 빨대나 수저는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고 주지 않으면 욕을 먹는다. 심지어 몇 개씩 추가로 요구해도 돈을 더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수저를 따로 사야 했다. 그리고 그 일회용 수저가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포장에서도 한국과 다른 점이 있었다. 요거트 통을 감싸는 포장이 종이로 되어 있었다. 한국은 아직 분리수거를 쉽게 하도록 ‘잘 뜯기는 비닐’로 재질을 바꾸는 단계인데 말이다. 요거트 껍데기를 종이로 할 수 있는 거였구나!
또 스위스에서 호텔 근처 동네를 산책하다가, 동네 분리수거장에 우유곽 분리수거장이 따로 있는 것을 보았다. 분리수거장이네, 하고 그냥 쓱 지나가다가 “Karton”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아니, 여기는 동네마다 우유곽 수거장이 따로 있단 말이야?’하고 놀랐다. 나는 우유곽, 두유곽을 바리바리 모아 이고지고 버스를 타고 가서 제로웨이스트 샵에 갖다 주고 있는데, 여기서는 동네에 분리수거장이 따로 있구나. 사진을 못 찍었는데 두고두고 안타깝다.
그리고 단연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에너지 부분이다. 유럽을 갔다 온 사람들은 ‘이렇게 침침하게 해두고 어떻게 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가로등도 한국보다는 어둡고, 실내 조도도 낮은 편이다. 그리고 숙소의 냉난방도 한국보다는 약간 덜 한다. 당시 9월이었는데, 호텔이 쌀쌀한 듯 해서 라디에이터를 켜려고 난리를 쳤는데 ‘이정도 기온에선 아직 난방 안 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에너지를 아끼는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생활’에 익숙해진다는 말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은 에너지가 차지한다. (에너지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개인의 삶에서도 이것을 체감할 수 있다. 신한카드 앱에 ‘그린인덱스’라는 기능이 있다. 개인의 카드 사용량을 분석해서 내 소비로 배출된 탄소배출량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기능이다. 한번 확인해 봤는데, 도시가스이용요금을 결제했더니 탄소배출이 압도적이었다. 가스비 고작 5만원인데 탄소배출이 261kg라니!!! 뭘 덜 먹고 뭘 덜 사고 이런 노력은 가스 사용 줄이는 것에 비하면 아무 영향도 없는 수준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에너지 이용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금 덜 밝게, 조금 추운 듯이 사는 게 개인 차원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럽의 덜 빵빵한 냉난방과 조금 침침한 조명을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 다가왔던 것이 화려한 서울의 야경이었다. 추석이라고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에서 엄청난 레이져 쇼를 하고 있었다. 하늘 끝까지 뻗어나갈 것 같은 빛기둥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밤하늘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엄청난 에너지 소비에 순간 멍해졌다. 대낮같이 밝은 거리, 화려한 경관조명,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들, 거기다 레이저 쇼까지......
서울은 대체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 저건 과도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경도, 빛축제도 참 아름답고 이 서울의 화려한 풍경을 참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순간을 위해 펑펑 터뜨리는 불꽃놀이 같기도 하다. 너무 아름답지만, 그것을 위해 초가삼간은 다 태워버리면 안 되는 법이니까. 우리 에너지 소비가 너무 과도하지 않을까?
실제로 국제 기후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의 탄소배출량은 55곳 중 도쿄와 뉴욕에 이어 3위였다고 한다. 그리고 감축률도 낮아서, 이런 감축률이면 조만간 뉴욕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사 : 서울은 탄소감축 겨우 3%, 조만간 뉴욕보다 많이 배출한다[탄소도시, 서울])
모든 것을 유럽처럼 그대로 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리적 환경과 이미 만들어진 도시의 모양과 여러 조건이 다르니까. 하지만 친환경이 중요한 가치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 환경은 정말 중요한 가치이기에 내가 지금 당장 불편한 것도 좀 감수할 수 있다는 합의 말이다.
한국은 아직 그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편리함’이 친환경보다 우선되는 가치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길을 만들기 위해 차량 이용이 불편하게 도로구조를 바꾼다면 엄청난 민원이 있을 것 같은데...... 일회용 수저를 돈 주고 사야 한다면 욕을 먹을 것 같고. 예전에 일회용 컵에 추가금을 냈던 것을 기억하는지? 그 때 시민들이 불편하다며 엄청난 사회적 저항을 받았고 결국 없어졌다. 지금도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시행을 기다리고 있지만 계속 유예, 유예되고 있다. 아직 사회적으로 ‘친환경’은 ‘편리함’보다 조금도 앞서지 못하는 가치인 셈이다.
‘지금 당장’과 ‘나의 편리’를 넘어, 우리의 사고의 폭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도시를 밝히기 위해 전력을 생산하는 곳은 저 먼 바닷가의 발전소이고, 송전탑이 세워지는 곳은 강남이 아니라 시골의 밭 한가운데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질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그 하수를 받아내는 곳은 한강이 아니라 지방의 하천들, 또는 개발도상국의 하천들이다. 피해는 받지 않고 편리함만 즐기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어! 불편하잖아! 돈 내잖아!’라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
사회의 방향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적 합의와 문화이다. 친환경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려면 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더 친환경적으로!’가 ‘더 편리하게!’ 만큼이나 당연한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