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에 대한 절박한 마음을 넘어
종종 부모들이 자녀에게 또는 교사들이 학생에게 “저기 아프리카에는 굶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사는 거를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지금 나의 처지보다 못 한 사람도 많으니, 지금 내 처지에 만족하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종종 장애인의 ‘장애 극복’ 서사를 보며 “저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도 저런 성과를 냈는데 나는 왜 이모양이지! 나도 해내야지!”라는 식으로 반성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의 행복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아낸다는 점에서, 저 생각은 “내 옆자리 누구누구는 금수저라서 강남 아파트에 살던데 나는 이게 뭐지.......”라며 불행에 빠지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타인이 나보다 가진 게 적어서 상대적으로 내가 행복하다든가, 타인이 더 가진 게 많아서 상대적으로 내가 불행하다든가 하는 마음은 결국 타인과 남을 비교하는 마음이다.
비교는 인간 본성인 것 같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 우리는 쉽게 백만장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저 사람도 힘든 게 있겠지”라거나 ‘저 사람은 이혼했잖아, 건강하지 않잖아, 자녀가 말썽이잖아’라며 타인의 멋져 보이는 삶에서 어떤 불행을 찾아내려 한다. 남의 행복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불행해지고, 남의 불행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인생이 위로받는다는 아이러니.
하지만 남이 행복한 것과 내가 행복한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반대로, 남이 불행하다고 내가 행복해야 할 당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다 그러고 살아! 그만하면 됐지, 너보다 못한 사람도 수두룩해!”라는 말을 듣는다고 내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위로되지도 못한다.
나도 주변 사람들이 서울의 주요지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명품 옷을 아무렇지 않게 사고, 신혼집을 30평대 브랜드 아파트로 마련하면서도 스스로 자기는 돈이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자주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마음이 잔뜩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잘 사는 것과 내가 행복한 것과 상관이 없다. 이를테면 나는 맛있는 음식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입맛이 확 떨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놓친 셈이다. 남이 잘 사는 것과 내가 음식을 먹는 것 사이에 하등 관계가 없는데 말이다.
작년에 다짐한 게 있다.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면서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지 말자고. 나는 요즘 말하는 ‘육각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내게 없는 것에 골몰하면서 ‘난 왜 이것도 없지, 내 나이 대 사람들은 다 이 정도는 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우울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굳이 내가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지금 가진 것만 보면서 만족하자는 말은 아니다. 더 갖고 싶은 것,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럼 가지도록 노력해봐야지.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없어서 지금 나는 불행해,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고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고 싶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사회의 평가에 시달리는 것도 힘든데 말이다.
행복은 상대평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평가이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만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SNS에는 ‘제가 정상인가요?’ ‘저는 보통인가요?’라며 자신의 정당성을 익명의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정상에 들어야 한다, 보통에 들어야 한다,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마음은 그 정도로 우리에게 절박한 마음인 것 같다. 인생에는 정답이 있어서 그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일전에 어떤 분의 말을 듣고 기함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이룬 분이었는데, 그 분이 노인 복지에 대해 ‘저는 노인들이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평가해서 차등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나이 들어 가난해졌으면 지원해줘야 하지만, 젊었을 때 흥청망청 살고서 노인이라고 지원하는 거 내 세금 아까워요.’라고 했다. 누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니! 나의 인생이 저 사람한테서 평가받는다면 어떨까? 하고 소름이 끼쳤다. 심지어 그 분은 동물권에 큰 관심이 있어서 동물권은 사회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분이었는데, 동물은 평가 없이 지원하고 인간은 평가한다고?
그 분의 개인의 문제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인생의 정답을 추구하는 사회라 그런 생각을 서슴없이 당당하게 말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남을 평가하고, 자기를 검열하는 거겠지.
나는 자기 검열을 그만두려고 한다. 쉽진 않겠지만 노력해봐야지. 남과 비교해서 내가 못났다고 지금 입맛을 잃고 잠을 못 자는 건 내 손해니까. 그리고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났다고 생각되서 우월감을 갖거나, 이런 잘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셨지, “남이 나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