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휘 Jun 24. 2024

쓰레기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웨이스트 랜드>, 올리버 프랭클린-윌리스

예전에 캄보디아에 살 때, 협력기관 중에 쓰레기 마을에 위치한 보육원이 있었다. 나는 쓰레기 마을이라는 걸 거기서 생전 처음 보았다. 조금 가까이만 가면 엄청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모든 곳에 파리가 날아다니고, 보육원 선생님들은 수건을 손에 쥐고 바닥을 치면서 하루 종일 여기저기 들러붙는 파리를 쫒았다. 눈에 보이는 곳에 쓰레기 산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거기서 재활용 자원이 될 만한 쓰레기를 뜨거운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골라냈다. 

내가 생전 처음으로, 쓰레기에 압도된 순간이었다. 


올리버 프랭클린 윌리스의 <웨이스트 랜드>는 시작부터 바로 쓰레기 산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인도 뉴델리의 쓰레기 마을에서 시작해서, 선진국인 영국의 현대적인 쓰레기 매립 시설도 방문한다. 우리가 답이라고 믿는 재활용의 진실과, 또 다른 답이라고 믿는 재고품의 기부가 실상 어떻게 각 지역에서 골칫거리가 되는지 현장을 돌아보면서 말해준다. 음식물 쓰레기와 오수 처리 문제, 그리고 어떤 상품이 생산되기 위해 발생하는 광산의 폐기물, 산업 폐기물,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핵 폐기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쓰레기 처리 현장으로 직접 가서, 우리가 몰랐던 여러 문제들을 눈앞에 들이민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층을 만들었다. 쓰레기로 가득 찬 새로운 지층. 인류의 활동을 아주 비극적으로 말하자면, 땅 아래에 있는 자원을 꺼낸 다음, ‘쓰레기 땅’ 즉 웨이스트 랜드로 만들고 있는 활동이다. 

450쪽이나 하는 이 두꺼운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영미권 특유의 만연체 같은 문체가 좀 읽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다. 내용적으로는, 술술 읽혀서도 안 되는 내용이다. 전 세계의 폐기물 처리장을 저자가 직접 방문한 방문기인데, 쓰레기 문제는 무겁고, 우울하고, 손쉬운 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쓰레기 문제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을 몇 가지 들자면,


쓰레기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나라 안에서도 차별적이다 : 선진국이 만든 쓰레기는 개도국으로 수출된다. 개도국 안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낙후된 지역이 피해를 감당한다. 자기가 쓰지도 않은 쓰레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자원이 마찬가지다. 먼 도심의 전기 사용을 위해 정작 위험을 감당하는 쪽은 시골이다. 

재활용은 답이 아니다 : 플라스틱이나 종이는 무한정 재활용할 수 없다. 재활용을 할수록 섬유질이 짧아져서, 재활용한 물품이 재재활용, 재재재활용 되기는 쉽지 않고, 그렇게 되더라도 최후는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다만 그까지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 뿐이다. 흔히 재활용은 무한한 고리라고 생각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만의 책임도, 정부만의 책임도, 기업만의 책임도 아니다 : 흔히 ‘정부가 정책을 잘못해서’ ‘기업이 가장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는데 개인은 노력해봤자다’는 식의,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책임은 기업에게, 정부에게 있고 개인은 어쩔 수 없다는 말들. 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을 만들기 위해 어느 광산 지역은 완전히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고, 내가 신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 인도의 강물은 거품으로 뒤덮이고 있는데, 누가 ‘나는 어쩔 수 없어, 나는 책임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쓰레기는 분해되지 않는다 : 그냥 매립지에 그대로 있고(때로는 물에 쓸려서 바다까지 가기도 하고), 몇십 년 동안 유해가스를 배출하기도 한다.  

저자는 나가는 글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결국 ‘덜 소비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쓰레기 감량의 3R인 줄이기(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은 실제로 효율적인 순서대로 나열된 것이다. ‘친환경 용품’이나 ‘재활용 물품’을 대체 소비하는 것은 그린워싱에 이용당하기 쉽고, 사람들은 ‘재활용 될거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 없이 더 자원을 소비하게 된다. 가장 우선은 ‘덜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참 쉽게 사고, 버리고, 선물한다. 나만 해도 쓰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생긴 장바구니용 에코백이 스무 개는 있다.

 다양한 크기의 가방이 여덞 개나 있지만, 인스타에서 본 귀여운 디자인의 미니백이 사고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이런 선택과 고민의 순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온다. 


저자는 우리 인간의 유산이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 쓰레기, 폐기물, 그리고 오염된 땅. 그것이 인류세의 흔적이다. 핵폐기물의 경우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오랜 시간 땅 아래에 지구가 사라질 때까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다 죽으라고?”(내가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확실하고 손쉬운 답은 없다. 다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태도 정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설령 의미없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 하는 게 책임있는 태도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배달이 너무 편하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