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고 그는 듣는다.
그가 말하고 내가 듣는다.
대화란 사람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확장성이 무궁무진한 행위. 체스나 바둑판에 말을 두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경우의 수를 가지는 것. 감각적인 방법과 논리적인 방법 또는 친절한 방법과 무자비한 방법, 침을 삼키고 침묵을 선택할 때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문을 열게 하는 제스처와 어떤 말도 할 수 없도록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함의 태도는 엄연히 다르다. 대화에 능할수록 그 모든 세밀한 차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지. 취할 수 있는 제스처도 많고 그 제스처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줄 안다.
예측할 수 있는 패턴을 그리지만 예측 불가능한 몸짓과 언어로 이뤄가는 것, 손바닥 하나로는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유려한 커플 댄스, 능숙한 바느질 장인의 손짓, 프로 수영선수가 자유형으로 물살을 가를 때의 거칠 것 없는 매끄러운 흐름과 같은 것. 정형과 비정형의 조화.
오래 나의 기억에 남은 대화의 순간들을
삶이 건조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본다.
제스처와 말의 내용이 대비될 때 그 예측불허함으로 인한 재미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그런 순간들은 인생영화처럼 곱씹을수록 새롭고
아무리 리와인드해도 질리지 않고
그러다 은밀한 자부심이 된다.
이를테면
막무가내여도 받아주는 다정함. 어떻든 상관없다는 무심함의 여유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껴서 나오는 막막한 다정함과 용납.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나오는 서운함의 표현. 절절함, 단호함, 읍소, 애정, 사랑, 탓, 이해, 관용, 그 모든 것을 순전한 밀도 100의 진심으로 넘나들 수밖에 없게 하는 마음의 크기.
그러므로 대화는 사랑의 시작이자 완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