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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머즈 Jun 24. 2022

우리 동네에는 뭐가 있을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들 - 사람


변화와 성장을 디자인하는 골목기획자들 - 

우리는 가락동이라는 동네에 모여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특별함을 기획한다. 





우리는 지금 생활상권 활성화라는 미션을 가진 서울시의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3년 일몰제가 적용된다. 즉, 지원을 시작해 3년이 되면 모든 지원이 일시에 종료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우리도, 지원이 끝난 후 자생을 할 수 없다면 사라져야만 하는 조직이다. 사업의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가 발발하여 1년의 시간이 더 생기긴 했지만, 남은 2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사업의 애초 목적이 지역상권의 활성화 - 골목의 부흥이니 우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사업 종료 후에 먹고살 궁리를 하고 있다.  먹고사는 궁리라고 하면, 진짜 뭔가 짜자하게 돈벌 궁리라고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한 지역에 십억원단위의 사업비가 들어와 그 지역의 변화를 도모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사업이 종료된 후, 그 조직이 뿔뿔히 흩어지는 일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정말 강렬하게, 이곳에서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성장한 조직이 지역에 남아주기를 원한다. 그러자면 적어도 먹고는 살만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앞장 서 일하는 몇몇의 희생을 연속해서 지원사업을 "따내고" 그걸로 이름만 바꿔 살아가는 건 우리 세대면 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에 있는 강의는 빠짐없이 참여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일하는 시간 외에도 자율적으로 모여 스터디를 하고, 워크숍을 한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진행하면서 지역에 사회적 자본을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먹여 살리는 모델 -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니까. 




일방 수혜성 사업으로 오해하기 쉬운 정부지원사업을 하면서 수익을 남겨 사업의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지역의 변화와 성장을 도모해 볼 수 있다는 거고, 두 번째로 그걸 통해서 우리의 성장도 함께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젤 중요한 마지막 이유는 이 일이 정말로 즐겁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상인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골목의 풍경. 
그 골목을 누비며 여유롭게 삶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
 


그 상상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우리는 당장, 골목의 부흥을 위해 여러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의 이론은 책을 통해, 논문을 통해, 도시 정책의 성과집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알고 싶었다. 이론은 이론일 뿐, 각 지역이 가진 환경과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는 건 이미 마을에서의 활동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실제 사례 특강과 멘토링, 인사이트 트립을 기획했다.


인천 개항로프로젝트 본부 방문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로컬의 김혁주 대표님과 개항로의 이창길 대표님이었다. 

전국의 로컬 사례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정보의 보유자였던 김혁주 대표님은 우리가 직접 경험했다면 수개월, 아니 어쩜 수년이 걸렸을지 모르는 다양한 사례들의 스토리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물어오셨다. "이 어려운 난관들을 헤쳐야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로컬의 사례들엔 모두 이면이 있죠. 쉽지 않은 일일 거예요. 모두가 스타트업 회사의 멤버들처럼 열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요. 이곳의 멤버들은 어떤 모습의 미래를 그리고 있나요?"


이미, 켜켜이 쌓인 삶의 경험을 신뢰가 바탕이 된 지역의 크루들과 함께하며 지역을 변화시킨, 그리고 앞으로도 변화시킬 개항로 프로젝트의 이창길 대장님은 본인의 스토리를 덤덤히 들려주며 계속 외치셨다. "할 수 있어요. 지역엔 뭔가가 있어요. 그 지역의 고유한 자원 같은 거죠. 분명, 이 지역에 뭔가가 있어요! 그걸 찾으셔야 합니다!"






 지역에 뭐가 없기에, 결핍을 느껴 시작한 활동이었기에,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선뜻 찾지 못해 미치고 팔짝  지경이었던 ..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해 본다. 아무리 둘러봐도 뭐가 없었다. 상점 수도 적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적었다. 그랬기에 그와 연결될 우리의 미래 모습도 찾지 못했다.

우리는 고민하고  고민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저 카페와 미용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골목과 골목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을까, 뭐가 숨어있을까를 고민해 봐도 보이는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문득 외쳤다. "여기는 사람이 있잖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를 가지고, 늘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 우리말이야!" 모든 일의 과정과 결과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사람을 제외하고 있었다. 이거다 싶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이 동네엔 우리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결을 맞춰가는 사람들이 있었지!'


마치,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해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마을이 가진 것 중에 사람이 있었다.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결을 맞춰가는 모든 이들이 포함되었다. 추진위원회의 위원님들을 포함해 사업팀, 그리고 프로젝트별로 모였다 흩어지는 느슨한 연대의 멤버들이었다. 







[사람] 중심에 놓자, 모든 기획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한 기획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살아남아 지역의 자원이  수도 있었다.  사업의 결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살아남을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람]에 초점이 맞춰지며 겨우겨우 방향은 잡았지만,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각자의 능력을 퍼즐처럼 조합해 기획팀으로 움직이겠다는 컨셉도 잡았지만, [먹고 산다] 말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울 줄은 몰랐다


우선, 치열하게 미션과 비전에 대한 논의를 했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에 충실한 소통. 그 과정은 몹시고 지난했고 날카로웠다. 서로를 응원하는 말도 오갔지만, 조금은 쓰라린 말들도 오갔다. 사업을 기획하는 데 있어 서로의 장-단점을 녹이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개인이 장-단점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기획을 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의미가 있었다. 한편으론, 사업 안에서의 내가 가진 역량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고 개인이 가진 능력 중 지금 함께하는 사업과 다른 콘텐츠는 각자의 부캐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러니 더욱 신이 날 밖에.


그렇게 여러 단계의 합의를 거친 우리는 우선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우리 스스로가 지역의 자원이 되어 수익사업화가 가능한 사업모델을 기획하고, 그 기획을 더욱 정교화시키고, 실행에 관한 순서도를 반복해서 그렸다. 우리가 골목의 기획자들이라면, 우리가 기획한 무언가는 우리의 상품 혹은 성과가 되어줘야 했다. 그게 뭘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 사업을 위해 여러 차례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떠올렸다. 생활상권 활성화를 위해 우리는 지역 주민 수요조사, 워크숍 등을 진행했었다. 거기에서 한결같이 나온 얘기가 우리 동네에는”거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볼꺼리, 즐길꺼리, 먹꺼리…. 골목에 오게 만들고, 골목에 머무르게 만드는 그 무엇이 없었던 것이다.


이걸 주제로 사업을 기획했다.





그렇게 탄생한 세러데이가락" 혹은 "세러데이가락마켓"은 가락동이라는 동네의 로컬브랜딩.

가락동의 소상공인이 호스트가 되어 골목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로컬마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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