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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보다는 맥락이다

우리가 브랜드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소머즈

인지 그리고 인식


인지의 정의를 살펴보자. 검색해 보면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머리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나온다. 즉, 객관적이고 지식적으로, 보이는 현상 그대로의 정보를 취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인식이 있다. 정의는 어떤 대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과정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 기억, 편향 등이 영향을 미쳐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두 단어의 정의와 의미가 브랜드와 뭔 상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관이 있다. 우리는 흔히, 브랜딩은 인식의 과정이라고 표현하곤 하니까. 브랜드의 입장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아, 저 브랜드는 사과를 파는 곳인가 봐"라고 하는 것과 "저기는 '애플'의 매장이야. 로고만 봐도 창의와 혁신이 느껴져!"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어떻게 기억할까?


많은 이들이 브랜드를 만들 때 이름이나 로고부터 떠올리지만, 세련되고 예쁜 로고를 만들었다고 브랜드가 저절로 유명해지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일은 현실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거나 혹은 팝업이나 매장을 열었을 때, 짜잔.. 하고 줄을 서고 곧 유명해질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지만, 과연 그럴까?



브랜딩과 마케팅의 현장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컨설팅하고 기획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브랜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로고나 이름,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랜드의 이름, 로고, 색감을 기억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브랜드를 둘러싸고 있는 '스토리'와 '맥락'을 기억했다. 특히 자신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엮어주는 이야기가 중요했다.


여기서의 맥락이란, 브랜드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어떤 연결점을 짓고, 어떤 의미를 만들게 되는가를 의미한다. 누군가의 삶과 브랜드가 연결될 때 비로소 브랜드는 의미를 갖게 되고 기억된다.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 관계를 형성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침대가 나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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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엊그제 더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시몬스 팝업에 다녀왔다. 세일링 보트를 테마로 그로서리 팝업을 열고 있었다. 침대 회사에서 뜬금없이 그로서리 팝업을 열고, 도무지 잠과 연계되지 않는 컨셉으로 팝업을 연다. 랍스터, 낚시찌처럼 생긴 볼펜을 잔뜩 쌓아 놓고, 갖가지 굿즈를 판다. 썸머 비치의 컨셉 확장을 위해 Hot Fish, Hot Dog를 판다. 다소 터무니없게까지 느껴지는 붕어빵과 핫도그다. 아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금 팝한 느낌의 핫도그(또는 붕어빵) 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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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 시몬스 침대가 진행한 광고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캠페인이나, 곳곳에서 열렸던 그로서리 팝업, 전시회 참여 부스를 떠올려보자. 시몬스 침대가 보여줬던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단순히 침대라는 제품을 설명하고, 기능을 알리는 전형적인 광고의 형태에서 벗어나질 좋은 수면과 휴식으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나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서 익숙한, 매트가 포켓스프링이라더라, 라돈이 안 나오는 거라더라, 침대 이즈 사이언스다 등의 문구보다는 최근에 시몬스를 통해 전달된 '편안함'과 '휴식'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더 많은 공감, 더 확실한 메시지를 가져다줬다.


게다가 각종 SNS에 업로드된 콘텐츠를 보자. 우리 상품 좋아요, 좋아요를 연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시몬스라는 브랜드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두고 함께 깊은 고민을 하는 다른 유명인을 연결지은 콘텐츠를 만든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활동들은 나의 침대 브랜드 선호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기왕이면 좋은 가치를 추구하고, 나를 위해 고민하고, 약간의 위트까지 가진 브랜드를 누가 마다한단 말인가? 게다가 ESG 경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브랜드를 선택한 나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까지 해주며 가치로운 소비인양 착각하게도 만든다. 아마 나는 다음번 침대를 살 때는 시몬스를 살 것이고 어쩜 아이들의 독립 선물로 침대는 시몬스지! 를 외칠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브랜드를 기억할 때, 브랜드와 나를 연결 짓는 '특정한 느낌과 경험', 즉 그 브랜드가 내 삶 속 어느 일상의 한 면에 들어와 짓게 될 스토리를 상상하며 구매를 결정하고, '맥락'으로 기억하게 된다.



존재감 그 불명확에 대하여


아, 물론!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고 손으로 잡히는 이름, 로고, 색감 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중요하다. 실제로 드러내는 성과 혹은 결과물의 관점에서 말이다. 잘 디자인된 브랜드 로고나 패키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된다. 패키징에 이끌려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도 물론 있으니까.


하지만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사람이라도 존재감이 희미한 경우도 우리는 흔하게 경험한다. 이유는 간단하지 않은가. 그가 제공하는 이야기, 나와 연결되는 맥락이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브랜딩을 생각할 때는 이름과 로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바로 질문을 던지는 일인데, "우리는 사람들의 어떤 라이프 스타일에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스토리를 만들게 될까? 어떤 맥락으로 그들의 삶, 일상 속을 파고들어 우리를 기억하게 만들 것인가?" 라며 자꾸만 파고드는 것이다.


나, 혹은 나의 브랜드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경험을 통해 그의 일상 속 어느 스토리를 완성했을까? 나, 혹은 나의 브랜드는 계속 그의 곁에 남아서, 그의 일상 속 스토리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좋은 경험을 선사해, 감정의 맥락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브랜드를 이성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으로 기억하게 된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지, 어떤 경험을 하게 할지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브랜딩은 고객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길'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길이 명확할수록, 그리고 고객의 삶과 깊이 연결될수록 브랜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게 된다.



그럼, 오래도록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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