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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랜드의 판을 다르게 짜라

'경쟁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고객'

by 소머즈

브랜드의 탄생


대부분의 브랜드는 태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표의 머릿속 작은 아이디어나 일상 속 기쁨에서 탄생의 씨앗이 움트고, 그것이 우리 눈앞에 상품이나 서비스로 실현되기까지의 시간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오랜 시간인지... 하지만, 또 대부분은 생기자마자 잊혀가기 시작한다. 퀄리티가 별로일 수도 있고, 외형적 존재감이 미미할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가 극소수인 이유는 간단하다. 똑같은 판에서 똑같은 룰을 따르고 있기 때문. 수많은 정보가 넘치고, 시간의 속도마저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브랜드의 생존을 위한 판을 다르게 짜지 않는 한, 우리 브랜드는 비슷한 다른 브랜드 속에서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시장의 법칙을 바꿀 수 없다면 브랜드의 법칙을 바꾸면 된다. 고객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결과를 산다. 사람들은 상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통해 얻는 삶의 변화를 원한다. 그래서 브랜드의 존재 이유, 세계관부터 명확한 것이 좋다. "우리 브랜드는 고객에게 어떤 변화를 약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부터, 아니, 이 고민이 시작될 때부터가 브랜드가 자라날 시장의 판을 다르게 짜는 것이다.




아주 좋은 본보기, 파타고니아


우연히 들렀던 곳에서 파타고니아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났다. 삼성동의 파르나스몰 쪽에 자리 잡은 이곳은 정작 물건 판매를 위한 진열공간보다는 적지 않은 크기의 브랜드 체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소파에 앉아 브랜드 홍보 영상을 볼 수도 있고, 제품을 맡겨 수선을 하거나, 브랜드 로고 등을 붙이는 체험 등도 가능해 보였다. 공간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이런 개념 있는 브랜드 같으니라구.. 를 연신 되뇌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당장 구입 계획에 없었던 제품을 둘러보며 "그저 사고 싶어서" 이게 누구에게 필요할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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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단순히 옷을 팔지 않는다. 그들은 환경 보호라는 신념과 가치를 판다. 그래서 고객은 옷을 단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보호라는 가치로운 행동에 동참하는 경험을 구매하게 된다. 댄 케네디의 카피라이팅 원칙대에서는 사람들이 "왜 우리 브랜드를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파타고니아는 구매의 이유를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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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구매를 하고 싶었다. 나의 소비가 가치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파타고니아는 그런 나의 (어쩜 허영심일지도 모르는) 욕구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브랜드는 고객에게 어떤 명확한 구매 이유를 제시하고 있을까? 단순히 "좋은 품질"과 "합리적 가격" 같은 흔한 문구를 넘어가 보자.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문구는 더 이상 인상적이지 않다. '오로지 고객맞춤'이 아닌 '경쟁사와 비교해서'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짜 놓은 판으로 들어가 그들의 기준으로 싸움을 벌이는 형세가 된다. 그들의 판에서 더 좋은 품질이 나오면 밀릴 거고, 더 저렴한 가격이 등장하면 외면당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확고한 세계관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통해 고객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고객의 삶과 깊숙이 연결되는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이 필요해졌다.



고객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연결된다.



유심히 보는 브랜드 중에 오롤리데이가 있다. 요즘이야 워낙 유사한 브랜드가 많아지긴 했지만, 여기처럼 명확하게 "우리는 Happy!"를 외치는 곳이라니.. 오롤리데이는 단지 다이어리와 문구를 파는 것이라 아니라 고객에게 '즐거운 일상, 긍정적인 삶과 해피'를 제안한다. 고객은 오롤리데이 제품을 구매하며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자신이 더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할 뿐 아니라,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 삶의 질과 가치를 높인다는 걸 느끼진 않을까? 기존의 시장 구조에서의 디자인 문구 회사라면 주장했을 법한, 더 예쁘고 더 임팩트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판에서, 이들은 해피를 외쳤다.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판을 다르게 짜는 방법으로 읽힌다.



그들만의 세계관으로의 은밀한 초대


고객과의 소통 방식도 바뀐다. 고객은 이제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일방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고객은 브랜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때로는 브랜드가 그들의 일상 속 이야기의 무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브랜드를 통해 그들 삶에서 주인공으로 빛나는 순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니 우리 브랜드는 그런 고객의 욕구를 읽는 게 필요하다. 읽으려면 관찰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브랜드 전략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고객의 삶을 연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고객이 일상에서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욕구를 브랜드의 스토리에 연결 짓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고객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나?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위안과 해결을 제시할 수 있을까? 브랜드 전략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답을 찾아 고객들에게 분명하고 매력적인 스토리로 전달하는 것. 그들을 우리의 세계로 초대해 보자.




고객의 가치가 곧 브랜드의 가치


내가 곧잘 외치는 구호 같은 게 있다. 바로. "고객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다!"인데, 브랜딩과 마케팅을 통해 고객의 성장을 돕는 내가 지향하고 있는 다짐 같은 거다. 나는 전략기획, 조직개발 등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케팅 전략, 유입량 증가, 매출 증대, 조직문화 개선 등의 무형의 결과를 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제공하는 서비스는 동일한데 가격은 제각각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걸 요청하는 브랜드의 크기, 해야 할 일에 따른 정량적 수치로 환산한 서비스의 가격이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같은 마케팅 전략 설계여도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구현해 주느냐에 따라 가격 장벽은 높아지기도 했고, 또 낮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객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본 역량과 경험치에 따라 좌우되었다.


A, B, C의 고객이 우리에게 같은 서비스를 받아도, 결과치는 다르게 나왔다. A에겐 잊지 못할 은인이 되어 계속 소개가 생겨나는 반면, C에겐 별로 해준 것이 없는 평범한 교과서로 치부되기도 했다. 같은 가격인데도 A 고객에겐 합리적이었고, C고객에겐 남은 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A 고객에겐 충분한 가치를 주고 살아남았지만, B, C의 고객에겐 잊히는 브랜드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러니 고객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잘 관찰해서, 우리가 꼭 필요한 고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BE 2.0에서 짐 콜린스가 얘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총을 난사하듯 영업을 해서 어쩌다 얻어걸린 곳이 고객이 되는 게 아니다. 우리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소총 몇 번 쏘아 보고, 우리를 간절히 원하는 유효한 타겟이라면 대포를 끌고 그곳에 가야 한다. 우리의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전력을 다 해야 한다.

브랜드의 판을 다르게 짜는 것은 곧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고객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한 우리의 세계관을 펼치는 것에 가깝다. 우리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인생을 바꾸고 그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선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결국, 판을 다르게 짜기 위한 시작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 브랜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고객은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고, 어떤 변화와 경험을 원하는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고객은 어떤 고객인가? 우리를 통해 어떤 결핍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 브랜드가 이 질문들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브랜드의 세상은 다시 짜인다.



고객에게 집중하라. 고객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마음을 얻고,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자.
시장을 따르지 않고, 시장을 움직이려 한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게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의 아주 작은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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