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식사를 마치고 바쁘단 핑계로 그간 미뤄뒀던 서재 방 정리를 시작하였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유난히 색이 바래고 손때가 묻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을 웬만해선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나이기도 하고, 정말 간직하고픈 책이 아닌 이상 쌓아두는 것을 원치 않아 이미 여러 번 정리한 책장. 그 안에서 살아남은 제법 오래된 책들 가운데 한 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무심코 펼쳐 든 페이지의 글귀를 나는 천천히 읊어본다.
"사람들이 비를 피해 수레와 헛간으로 도망칠 때 그대는 먹구름 아래로 가라. 밥벌이를 일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아라. 땅을 누리되 소유하지 마라. 모험심과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농노처럼 인생을 사고팔며 낭비하는 것이다."
굵게 밑줄을 그어 둔 글귀 옆에 휘갈기듯 써 내려간 글씨에 내 젊은 날들의 고뇌가 묻어난다. 스무 살 무렵 산 책이지만, 그 글씨를 끄적이던 날은 아마 서른이 훌쩍 넘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의 나는 자주 방황했고 종종 걸려 넘어졌다.
당차고 자신감에 넘쳤던 이십 대 후반의 S는 그녀의 마흔 살 생일엔 맘에 꼭 드는 멋진 차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겠노라 다짐했었다. 중년의 나이엔 아마 멋지게 성공하고 단단한 커리어를 일구어 가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랬던 그녀가 막상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땐, 자신이 그달의 반찬값이나 계산하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지내기도 했던 것 같다.
가진 것 안에서 자족할 줄 알고 돈보다 시간과 경험을 누릴 줄 아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자고 되뇌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과 아직 늦지 않았으니 무언가 번듯하게 이루어 낼지도 모른다는 내 안의 꿈틀거림을 함께 마주하던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양 극단을 아슬아슬 오가며 살았었다.
마흔을 누가 불혹의 나이라 했던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데 아니, 누가 또 그랬다지. 그만큼 정신을 미혹케 하는 일이 많아 정신줄 단단히 부여잡아야 하는 나이라 붙은 수식어가 아니겠느냐고. 아마 후자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쉰의 나이를 바라보는 내가 서른아홉의 S에게 건너간다면 무어라 속삭여줄 텐가..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도 그저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열망도 모두 네 것이니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정처 없이 소로우의 오두막을 찾아다니는 것도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 테고, 그렇다고 인생을 사고팔며 낭비하는 농노의 삶은 살고 싶지 않은 너의 마음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이렇게 어지러운 욕망의 시대에 성공을 향한 꿈은 어쩌면, 가난한 영혼으로 늙어 죽진 않겠다는 꿈보다 차라리 이루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니..
정답이 없는 인생이지. 너보다 십 년을 더 산 나도 여전히 번뇌하고 후회하는 날들이 많단다. 하지만 네가 열망하는 것들로 괴로워한다는 그 자체가 네 삶을 치열하게 살아 내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무엇이 되었든 네 마음의 소리를 좇아 가보길 바란다. 인생은 어차피 모험인 것을, 두려워말고 너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렴.
네가 발 딛고 서있는 네 삶의 중심에서 진정한 ‘월든’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 소로우도 부럽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