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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한 마음 Sep 25. 2020

나의 옷장 이야기

풀지 못한 실타래

아이가 두 돌이 지날 무렵 깊어지던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집안의 많은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부피가 큰 아이의 짐들도 제법 정리가 가능했고, 좁은 안방을 꽉 차지하고 있던 침대 프레임도 걷어냈다. 소파는 관사에 사는 동생네로 보내주고 신혼 때 마련한 굵직한 가구로부터 자잘한 장식품까지 모두 정리하였다. 미련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갖다 버렸는데 아니, 다 갖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몇 해 뒤 이사를 하고서야 알았다. 정리되지 않은 구역이 존재했음을.


그것은 바로 옷장이다. 정확하게 말해 '내 옷장'이다.


몇 계절을 앞서 물려받은 옷과 선물 받은 것이 대부분인 아이의 옷으로 채워진 옷장 그리고 그만의 선별법으로 가려낸 옷들로만 채워놓은 너무나 가지런한 남편의 옷장. 그 사이로 난잡하게 흩어진 내 옷가지들이,

정리되지 않은 내 옷장이 나는 좀 혼란스럽다.

정리되지 않고 뒤죽박죽 엉켜있는 채로 그냥 서랍을 닫아버리면 그뿐. 장롱문을 닫아버리면 그뿐. 굳이 헤집어 분류하고 정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고 당분간은 그럴 에너지도 없다며 나는 자꾸만 그것을 미뤄왔다.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랑이 대체 네 옷장 정리는 언제 할 거냐고 다그쳐 물으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대꾸했다.

그깟 옷장 정리 따위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는걸 왜 자꾸 재촉하냐고 되려 큰소리치기도 했다.


그래, 별것도 아닌걸 난 왜 자꾸 미루고만 있을까..






내 옷장에는 세 부류의 옷이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분류법이 있겠지만 나의 그것은 좀 더 특이한 지점이 있다.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오롯이 내 취향이 반영된 내 맘에 들어 산 옷이다. 즉흥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든 꾸준한 내 취향을 반영한 것이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취향의 옷이다. 파스텔톤의 무난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옷. 단정하지만 밋밋하지 않은, 튀지 않지만 나름의 개성을 반영한 옷.


두 번째는 오여사가 사다 준 그녀 취향이 전적으로 반영된 옷이다. '엘레강스 오여사'는 친정엄마의 별칭이다. 내가 붙여 준 수식어에 걸맞게 그녀는 매우 우아하고 화려하고 도도한 취향을 지녔다. 그녀에게 평범하고 흔해빠진 것은 적어도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용납되지 않았다. 모든 화장은 선크림과 비비크림쯤에서 마무리되는 딸은 365일 풀 메이컵의 엄마를 보며 늘 감탄을 하곤 했다. "여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도 꾸며야 여잔거야. 호호~" 웃으며 화장을 고치는 그녀를 별 유감없이 바라보게 된 건 우리의 관계를 더 이상 엄마와 딸이 아닌 여자대 여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녀는 늘 화려하고 눈에 띄는 여자였다.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한데 세련된 감각까지 겸비한 그녀를 사람들은 늘 칭찬했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주변 여자들은 그녀가 착용한 옷이나 장신구 따위를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왔고 그녀는 늘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그녀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 나 역시 자랑스러운 날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날동안 나는 그녀를 경멸했다.


엄마가 사다 준 독특하고 요란한 옷들(적어도 내 기준엔)이 싫어 난 참 오랜 시간을 투쟁했다. 내 결정권이 거의 없었던 십 대 땐 다행히 교복으로 버틸 수 있었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취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20대에 나는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한낱 누더기 헝겊 같은 옷들만 주워 입었는데, 가끔 반듯하게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날에는 그녀가 산 옷을 입었다. 졸업을 하고 나니 반듯하게 갖춘 옷을 입어야 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다행히 첫 직장은 내 바람대로 취향 따위는 배제되는 유니폼을 입는 직장이었기에 또 한동안은 그럭저럭 별 고민 없이 대충 걸치고 다녔다.

그런 유니폼이 지겨워지고 답답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시는 갑옷처럼 꽉 짜인 틀 속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의 취향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 사이 나는 두어 번쯤 이직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남들의 시선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결혼을 했고 출산을 하면서 예쁘게 가꿔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중년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보니, 이제야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내 옷장의 세 번째 부류의 옷이 남았구나..

세 번째 부류의 옷은 오여사가 사준 옷 가운데 그나마 내 취향과도 부합하는 류의 것이다. 패셔니스타답게 쇼핑의 고수이기도 한 오여사는 자신의 몸매에 꼭 맞는 고급스러운 재질의 옷을 저렴하게 구매할 줄 안다. 체형에도 맞지 않고 싼 티 나는 재질을 비싸게 주고 사는 재주를 가진 나는 매번 쇼핑에 실패하고 중얼거리곤 한다. 역시 엄마 눈이 정확해...

뭘 걸쳐도 빛나고 예쁘던 시절을 이제 비껴간 탓인지 헝겊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면 정말 누더기 옷을 걸친 초라한 아줌마가 거울 앞에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템을 오래 두고 입는 취향을 지녔으니 이제는 싸구려 재질의 옷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여전히 소박하고 무난한 취향의 옷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과감한 패턴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내 기준에 고가이지만 나한테 꼭 맞춤이다 싶은 옷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지갑을 열 줄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표준 체형과는 거리가 먼, 내 체형에 꼭 맞는 옷은 정말 찾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행히 그렇게 취향을 찾아가고 있으니 이제 옷장을 정리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 세월 엄마와 뒤엉킨 수많은 이야기들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우선 옷장 정리부터 시도해봐야겠다.

내 취향과는 무관한 저 옷 무더기들을 걷어내고 나면 뒤엉킨 실타래의 한 줄기 끝을 찾아낼지도 모르니.. 시작점을 찾으면 끈기 있게 풀어헤쳐 갈 용기도 생길 테지.


자, 이제 옷장 문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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