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벨이 아침을 가르며 울려 퍼진다. 전날의 피로가 덕지덕지 눌러앉은 두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양 손이 허위허위 어둠 속을 헤집는다. 알람을 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푸른 창을 연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은 커다란 유리창이 아니라, 내 손 안의 작은 창 휴대폰을 켰다는 말이다.
간밤에 온 단톡 방 톡만 백여 개. 이 방은 뭔가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구나.. 얼마 전 오픈한 취미 단톡 방에 새로운 멤버들이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서른 명이 모였고 매일 읽지 못한 톡이 몇 백개씩 쌓여갔다. 점점 대화를 들여다보기가 버거워지고 모임방 참여가 뜸해졌다. 일단 이 방은 오늘도 그냥 패스하기로 한다. 몇 개의 스팸 메시지는 확인하자마자 지우고 뒤이어 오는 톡을 확인한다. 새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 멤버의 첫 게시글을 알리는 메시지이다.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그녀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생각한다. 그래, 오늘이 글쓰기 마감일이구나. 아직 시작도 못한 글을 나는 오늘 안에 써 올릴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스치고, 다음 M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지난밤 잠들기 직전에 찍어 보낸 스크린 타임 인증사진에 대한 답신과 뒤이어 이번엔 그녀가 찍은 인증사진을 보내왔다.
지난주 수요일 독서모임을 마치고 이어진 커피 수다 때 우리는 의미 있는 다짐을 주고받았다. 휴대폰 중독이 도를 넘어 이제는 중증에 이르렀다는 M의 고백에 나 역시 그러하다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끼던 차였다며 나는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우리에겐 결단이 필요하다고, 휴대폰 사용 절제를 위한 노력을 함께 해 보자며 뜻을 맞댔다. 실행을 위한 방안으로 M은 휴대폰에 탑재된 ‘스크린 타임’을 활용해서 서로 매일 휴대폰 사용 인증 사진을 공유하자는 제안을 했다. ‘스크린 타임’은 사용자의 휴대폰 총 사용시간 및 각종 앱이나 웹사이트 등의 사용시간을 항목별로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휴대폰 사용 관리 기능이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의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능이지만, 요즘은 우리처럼 스마트폰에 시간을 낭비하는 성인들이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쓰는 안드로이드 폰에는 기본 탑재된 기능이 아니라서 그 자리에서 바로 관련 앱을 찾아 깔았다.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보겠다고 취한 첫 번째 액션이 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라는 이 현실이 몹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이미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 갇혀 한 발짝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노예가 되었으니.
휴대폰의 노예, 미디어의 노예, 디지털의 노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일단 인식하였다면 그다음 선택은 이제 각자의 몫이겠지. 더 이상 이 세계에 예속되지 않겠다고,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겠노라 선언하고 나선 이들이 적지 않다. ‘디지털 디톡스’ 혹은 ‘디지털 금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걸 보면 알 수 있다. 자기만의 인터넷 휴(休) 요일을 지정하여 디지털과의 이별 연습을 하기도 하고 M과 내가 사용하는 앱도 이미 대중적이다. 그래, 금식까지는 아니어도 간헐적 단식 정도는 시도해 볼만하지 않은가. 내 인생에 금식 다이어트나 디톡스는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다. 적어도 노예의 삶으로부터는 벗어나고 싶으니 나는 이 도전을 쭉 이어가 보려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