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운전을 오래 한 탓인지 잠을 잘못 잔 탓인지 한쪽 어깨는 자꾸만 쑤시고 가슴에 검은 돌덩이를 매단 듯 기분은 축축 가라앉았다. 그런 와중에 새벽 네 시까지 잠을 못 잤다는 신랑의 볼멘소리는 내짜증을 한껏 돋우었다. 하루밖에 남지 않은 휴일이 아쉽다는 핑계로 밤새 잠 안 자고 소파와 한 몸인 채 리모컨을 눌러댔거나 휴대폰만 잡고 있었을 게 뻔하게 그려지니 말이다.
그랬다. 그날은 긴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짧지 않았던 연휴 내내 우리는 종종 으르렁대며 다퉜다. 다른 명절 연휴와 사뭇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딱히 양가의 방문에서 꼬투리를 잡을 만한 이벤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기다렸다는 듯이 틈만 나면 발톱을 세우고 할퀴려 들었다. 전날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탓에 몹시 피곤했던 아침부터 다투기 시작해서 오후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다 저녁이면 누그러져 화해하는 패턴이었는데, 다툼은 매번 이전보다 더 격렬해졌다.
그것은 마치 핑퐁게임처럼 공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양새였는데, 저돌적으로 날아온 공을 되받아 더 세게 후려치기 위해 우리는 각자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노리고 치명타를 날리는 순간에야 이 난폭한 게임은 중단이 되곤 했는데,우리는 이것이 ‘승자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전쟁을 멈추지 못했고, 번번이 처절하게 패배했다.
나는 깊은 절망과 상실감에 사로잡힌 채 식탁을 정리했지만, 차마 설거지까지 할 힘은 나지 않아 더러운 그릇 무덤을 뒤로하고 책 한 권을 꺼내 식탁에 다시 주저앉았다. 공교롭게도 돌아오는 독서모임의 함께 읽기 할 책은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이다.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터라 내심 기대하며 주문한 책이었는데 참 시기적절하기도 하지. 이제 겨우 여섯 살 난 아들과의 관계에서도, 결혼 9년 차에 접어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늘 패하고만 있는 중이니 몹시 간절했다.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 책이 마지막 잡은 끈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묵은 관계가 책 한 권으로 무슨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겠나 하는 회의도 꼭 그만큼 따라왔다. 나는 그렇게 책장을 열었다.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와 서로 주고받을 때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연민이다.”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는
다른 말로 ‘연민의 대화'(Compassionate Communic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연민이라.. 누군가 부부가 무엇으로 사느냐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곤 했다. ‘연민’으로 산다고.
각자 불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역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이유라 여겼다. 물론 이는 부부 사이뿐 아니라 내가 맺는 모든 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말들이 내게 좀 더 공감의 언어로 다가왔다.
로젠버그 박사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민이 우러나는 유대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이 접근 방식을 '비폭력대화'라고 부른다고 했다. 여기서 ‘비폭력’은 간디가 사용한 것과 같은 뜻이다. 우리 인간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게 되어 있는지 일깨워주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라 한다.
책의 첫 번째 장에서는 NVC 모델의 네 단계에 대해 소개하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ㆍ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ㆍ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
ㆍ그러한 느낌을 일으키는 욕구, 가치관,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
ㆍ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우리의 본성인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 방식을 적용한 사례들도 각 장마다 실려 있다.
책의 두 번째 장에서는 도덕주의적 판단과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 삶을 소외시키는 다른 형태의 대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장을 읽으며 특히 나에게 적용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불과 일주일 전에 센터에서 진행된 육아 상담 때 상담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가 육아를 함에 있어서 감정보다 판단이 많이 개입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고, 상담을 받는 내내 너무 감정이 벅차올라 내가 그것들을 잘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그런 나를 오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그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매 순간 판단했다. '도덕주의적 판단' 말이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인지, 무엇이 ‘틀렸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아이에게 주지 시키기 위해 애쓰곤 했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를 알아차리기보다 꼬리표를 붙이고, 비교하고, 강요하고, 판단하는 말을 배우면서 자랐고 내 아이에게도 똑같이 그것을 요구하였다.
작가는 이를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라고 일컫는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방법은 위계제 또는 지배/피지배 사회구조에서 시작되었고, 동시에 그러한 사회구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왕, 황제, 귀족 등 소수 지배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인구를 통제하려면, 대중이 노예 같은 사고 구조를 가지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쁘거나 잘못됐음을 암시하는 도덕주의적 판단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을수록,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가 하는 판단의 기준을 외부의 권위자에게 구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진실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 이 부분에서 나는 뜨끔했다. 내가 느끼는 내 모습을 꼭 그대로 표현해 놓은 구절 같아서였다. 내가 양육받은 그 방식대로 길러진 내 아이가 꼭 그런 모습을 빼닮기를 나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온순한 하인이나 착한 노예로 길러진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담사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내 선에서 그 연결고리를 반드시 끊어야만 한다.
책의 세 번째 장부터는 첫 장에서 소개한 NVC 네 단계를 하나씩 나누어 자세히 고찰한다.
작가는 평가와 관찰을 분리하는 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평가와 섞지 않고 명확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정적인 일반화를 피하고 진행 중인 변화를 반영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관찰을 표현하는 말은 때와 맥락에 맞게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내 생활에 구체적으로 끌어와 적용시켜 보건대,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항상~하다’는 평가의 말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늘상 그런 식'이라고 손가락질 해대며 비난하던 나에게 그는 얼마나 자주 상처를 받았던가. 돌이켜보면나는 매번 감시자 혹은 평가자의 모습으로 일관해왔던 것이다.나의 기준과 잣대로 상대를 저울질하려 들었고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했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은 애써 하지 않았다.
관찰과 평가를 뒤섞지 말 것.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때와 맥락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밑줄을 그으며 마음에 꾹꾹 눌러 새긴다.
네 번째 장에서는 NVC의 두 번째 요소인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욕을 다 적으면, 그것은 우리의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 수보다 훨씬 많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렇다고 여긴다.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느낌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를 적어본다면 나는 과연 몇 개나 적을 수 있을까? ‘좋다’ 혹은 ‘나쁘다’와 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보다 자신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늘리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상대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용기를 필요로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분명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이리라.
이어지는 장도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껴 읽으며 꼭꼭 씹어 내 안에 새기려고 책장을 덮었다. 읽은 내용들을 내 삶으로 가져와 천천히 적용시켜 보고 싶다. NVC 교육이나 훈련 프로그램도 제법 다양한 것으로 아는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참여도 해보고 싶다. 내가 알게 된 내용에 대해 남편과 함께 대화 나누며 적용시켜 보고 싶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을 테지. 하지만 작은 부분이라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점들을 고민해보려 한다. 백일쯤 목표로 삼고 노력해본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주에 있을 독서모임에서 멤버들과도 그 이야기를 한번 나눠봐야겠다. 나보다는 그래도 연배가 있는 인생 선배들이니 좀 더 현실적인 대안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독서모임 멤버인 미영쌤이 공유해 주신 로젠버그 박사의 강연 영상도 두 편을 이어서 봤다. 각 15분짜리 짧은 영상이었는데, 입문 부분이라 책에서 읽은 내용과 대부분 겹치긴 했지만 글로 읽을 때와는 분명 또 다른 울림이 있었다. 특히 로젠버그 박사가 비폭력대화의 목적에 대해 설명할 때, 그것을 표현한 노래를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들려주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것을‘가슴에서 우러나서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가슴에서 우러나 줄 때에는 다른 사람의 삶에 기여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가 전하고 싶은 진심이 기타 선율을 타고 내 가슴에도그대로 흘러와 닿았다. 따뜻하고 위트 넘치는 그의 강연을 이제는 글과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그가 가슴에서 우러나서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삶에 실제로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와 함께 밥을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이 구절만큼 ‘남편’이라는 자를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그와 나는 앞으로도 무수한 날 동안 함께 밥을 먹어야 할 것이며,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할 게다.
그와 나를 잇는 것이 전우애이든 연민이든
우리가 마주하는 밥상이 좀 더 따스할 수 있길,
우리의 전쟁이 서로를 할퀴기만 하고 상처만 남기는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