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러도 월요병이 있다.
"엄마, 일요일 밤이 무서워요." 지난 3년 동안 아침마다 자기가 할 몫을 착실히 해왔던 홈스쿨러 1호, 첫째 아이의 솔직 발언이다. 난 아이의 머리맡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월요병을 피할 수 없었다. 일요일 저녁까지 교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음날 아침에는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월요일 오전,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과일 주스 한 잔이라도 갈아서 먹이면 좋으련만. 반쯤 뜬 눈으로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세 아이들도 "배고파요. 엄마~"를 외치며 방문을 벌컥 연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공부를 하려고 둘러앉았다. 앉기는 했는데 다들 공부하기 싫은 눈치다.
하루는 홈스쿨 모임에 갔는데 어떤 엄마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들 몇 시에 일어나세요? 저는 아침잠이 너무 많은데요. 아이들도 덩달아 늦게 일어나요. 오전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조금 있으면 점심 준비해야 할 시간이더라고요." 난 늦잠 동지 엄마가 반가웠지만 차마 맞장구치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면 등교 시간이 있고, 직장에 다니면 출근 시간이 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가면 어쨌든 일상이 시작된다. 홈스쿨은 다르다. 집이 학교이고 학교가 집인 홈스쿨러들에게 누군가가 시간을 정해주거나, 감독하지 않는다. 나와 세 아이가 월요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오전을 어떻게 보낼지는 순전히 우리 넷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인 내 의지를 따라 아이 들도 의지를 발휘하게 된다. 자율성이 큰 만큼 책임감도 크다.
나의 숙원, 월요병을 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던 해에 들었던 시간 관리 강의 노트도 다시 꺼내 읽었다. 다 옳은 말이었지만 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나와 아이들은 잠들어있던 몸을 깨우기 위해 춤을 췄다. 막 일어난 아이들과 잠옷 바람으로 추는 모닝 댄스. 미국 어린이들이 신나는 찬양에 맞춰 춘 워십댄스 영상을 보고 따라 했다. 영상과 완전히 다른 동작을 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빵빵 터졌다. 땀도 나고 잠도 깼다. 물론 오래가진 못했다. 공부하려고 앉으면 급격히 에너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닝 댄스는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잠에서 깨면 아이들을 꽉 안아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굿모닝, 상쾌한 아침! 새로운 하루를 주신 하나님~ 신나고 즐거운 하루로 모든 하루 축복하소서~"라는 노래도 함께 부른다. 잠이 덜 깨도 서로 꽉 얼싸안으며 노래한다. 아이들도 나도 꼭 이렇게 하자고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아침을 여는 루틴이 됐다. "굿모닝, 상쾌한 아침!"이라고 노래하면 아침이 정말 상쾌하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 축복하소서!"라고 외치면서 새로운 한 주, 월요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전보다 맑은 정신으로 월요일을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설정하는 것보다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일찍 일어날 만한 하루', '열심히 살만한 하루'라는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가짐은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 밤에도 숨을 쉬고 생명을 유지하여 새 날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마치 생일을 기다리며 일찍 누워 새벽녘에도 몇 번씩 눈을 뜨는 아이처럼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아이들도 선물처럼 주어진 기회의 하루라는 것을 날마다 기억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감사의 노래는 우리의 아침을 '일찍 일어날 만한 하루', '열심히 살 만한 하루'로 바꾸고 있다. 마음을 깨우는 축복의 한 마디, 따뜻한 포옹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더 이상 월요일이 오지 않는 날까지 날마다 월요병과 씨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와 축복의 언어로 월요일마다 월요병을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