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안녕하세요. 홈스쿨 모임 안내합니다.”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책에서만 봤던 홈스쿨러를 만나는 기회였다. 그날 모임에서는 ‘숲 체험’을 한다고 했다. 숲 체험이 생소했던 난 ‘홈스쿨러는 역시 활동도 남다르다.’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푸른 잔디가 넓게 펼쳐진 숲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상상과 함께.
모임 날 아침, 공원에 일찍이 모인 홈스쿨러들을 멀리서부터 보았다. 다섯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유아부터 10대 아이까지,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기로 했었던 ooo 예요.”
“아! 어서 와요. 반가워요!”
삼남매와 나를 반겨주는 넉넉한 미소에 긴장을 한시름 놓았다. 발맞춰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앞장선 엄마와 아이들이 자꾸만 공원 반대편 방향으로 갔다. 일행이 멈춰 선 곳은 공원과 붙어 있는 산 입구였다. ‘여기가 혹시 그 숲? 설마.’ 쏟아질 듯 가파른 경사에 할 말을 잃었다. 왜 평지일 거라고 믿었을까. 안일했던 엄마를 따라온 우리 5살, 4살 꼬마는 올라가기 싫어서 입이 삐죽 나왔다. 100일 된 막내는 본능에 충실해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아기띠, 내 아기띠를 깜빡했다. 하필 이런 날 내 한 몸과 같은 아기띠를 두고 오다니. 8kg 넘는 통실한 아기를 데리고 산을 오를 이동 수단은 스토케 디럭스 유모차뿐이었다. 평지를 오래 다니려면 휴대용 유모차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가져온 유모차였다. 애꿎은 산과 유모차만 번갈아 보았다. ‘지금이라도 다음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집에 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셨는지 몇몇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유모차 같이 끌자!”
“옙! 옛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자아이 셋이 홍길동처럼 등장했다. 곧 경쟁하듯 유모차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나는 그날 점심을 먹으려고 머물렀던 정자에 도착하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산행을 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단단히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민망함을 삭일 수 없었다. 그 사이 유모차는 주인 없이도 산을 잘 오르고 있었다. 유모차 미는 게 뭐가 재밌다고 저렇게들 신이 났을까. 내 옆을 쌩하고 지나쳐 오르는 아이들의 옆모습을 보았다. 구김살 없이 환하게 웃는 표정을 포착했다.
오 년이 지났다. 그때의 소년들은 제법 남성미를 풍기는 고등학생 나이가 되었다. 여드름이 올라오고 수염 자국이 거뭇하게 보인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오래전 숲에서 보았던 싱그럽고 환한 미소다. 어린 동생들을 번쩍 안아 올려 예뻐하던 오빠 부대의 뒷모습이다. 내가 아는 제일 편안하고 포근한 10대의 얼굴이 아닐까.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홈스쿨링이 아이들을 맑게 키운 걸까, 맑은 아이들이 홈스쿨링을 하는 것일까. 오빠 부대는 내가 홈스쿨링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첫인상으로 남아있다.